"제가 일식집에서 일할 때 반찬으로 김치를 내주는 거예요. 왜 일식집에서 김치를 내주는지 이해가 안 됐어요. 잘못하면 김치가 일본 음식으로 오인받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들었죠."
코펜하겐김치페스티벌 기획자 최하영 씨 (사진: 여지형)
최하영 씨가 말했다. 최씨는 2012년 10월 말부터 9개월 동안 워킹홀리데이로 덴마크에 살았다. 한국인으로서 너무나 당연히 여겼던 '김치=한국’이라는 등식이 어그러지는 모습을 일터에서 직접 봤다. 세계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이자 국민 의식도 뛰어나다고 평가받는 덴마크에서도 한국은 ‘듣보잡’ 아시아 나라였다.
“제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어떤 사람이 ‘너희 대통령한테 살 좀 빼라고 하라’라고 농담을 던졌어요. 처음에는 무슨 소리인지 의아했는데, 알고보니 남한과 북한을 헷갈린 거였죠. 이게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덴마크가 선진국이라고 하는데 남북 구별도 못할까 생각했죠."
최하영 씨는 한국을 거의 모르는 덴마크에 한국을 제대로 알리고 싶었다. 워킹홀리데이 생활 중에 만난 한국인 워홀러 이종현 씨와 덴마크에서 김치 사업을 벌이려던 한국계 덴마크 입양인 킴 돈보에 야콥슨(Kim Tonboe Jacobsen)이 최씨의 뜻에 동의했다.
세 사람은 2013년 여름 덴마크 첫 김치 축제를 열었다. 이 축제는 2014년 코펜하겐 김치 페스티벌로 이름을 바꿨다. 올해는 덴마크에서 네 번째이자 3회차 코펜하겐 김치 페스티벌이 열린다. 6월24일부터 26일까지 3일 동안 뇌어포트(Nørreport)역 근처 토브할렌(Torvehallerne) 시장에서 열린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서 김치 페스티벌을 시작하고, 한국에 돌아온 뒤로도 4년째 이어가는 최하영 씨를 한국에서 미리 만났다. 최 씨는 한국에서 대학원 생활을 하며 올해 김치 페스티벌을 준비 중이었다.
일자: 2016년 6월7일 오후 4시
장소: 한국 서울 북촌 인근 카페
참석: 최하영 씨, 여지형 에디터, 안상욱 에디터
안상욱: 덴마크로 워킹 홀리데이를 떠난 이유가 궁금합니다.
최하영: 공연 쪽에 관심이 있어서 공연 기획을 준비했어요. 핀율(Finn Juhl)이라는 덴마크 의자 디자이너의 작품을 보고 많은 감명을 받았어요. 나중에 공연을 연출할 때 소품으로 사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덴마크에 가서는 생각이 많이 바뀌었죠.
안: 공연 쪽에 관심이 있었는데 김치 페스티벌을 열었다니 의외네요.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최: 크게 세 가지 계기가 있어요. 저보다 하루 일찍 들어간 친한 오빠가 있어요. 이종현이라고, 얼마전 덴마크 워킹홀리데이 책도 냈어요. 둘이 블로그로 연락이 닿았는데 마침 덴마크에 들어오는 시기가 하루 차이라 워홀 생활 동안 친하게 지냈어요. 둘이 함께 2013년 2월 코리아 레스토랑 데이 행사를 개최했는데, 이때 덴마크인이 의외로 한국을 많이 좋아하는 걸 확인했죠.
제가 덴마크에 머물 때 일식집에서 홀서빙 일을 했는데, 손님이 일식집에서 김치를 달라고 하는 거에요. 왜 김치를 달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죠. 일식집에서 반찬으로 김치를 조금씩 주는 것만으로도 김치를 일본 음식으로 오해할 수 있다는데 생각이 미쳤어요. 손님들이 어느 나라에서 왔냐고 물어봤을 때 한국인이라고 해도 잘 모르더라고요. 태국인이라는 얘기를 더 많이 들었어요.
한국을 안다는 사람도 제대로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어요. 마침 제가 덴마크에 갔던 때가 2012년이었거든요.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2012년에는 가수 싸이 얘기를 많이 물어봤는데, 2013년 초 북한이 핵도발을 벌인 뒤에는 한국에 있는 가족이 괜찮냐고 묻더라고요. 이상했어요. 덴마크 사람들이 한국을 잘못 생각한다고 느꼈죠.
코펜하겐김치페스티벌 기획자 최하영 씨 (사진: 여지형)
안: 덴마크에서 김치 페스티벌을 열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이었나요?
최: 금전적인 문제였죠. 제가 벌었던 돈을 종자돈으로 시작했어요. 두 번째로는 어떻게 김치를 조달하느냐는 문제였어요. 직접 만들거냐 아니면 후원을 받을 거냐 갈림길에 섰죠. 후원 받는 쪽이 가장 좋지만 안 된다면 제가 김치를 직접 담궈야 할 상황이었는데요. 기획안을 만들어 보냈더니 ‘종가집’에서 하루만에 흔쾌히 오케이 사인을 내주셨어요. 그때 인연으로 지금도 계속 매년 후원 받고 있지요.
안: 김치는 얼마 정도 쓰나요?
최: 처음에도 100kg은 넘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전체적으로 후원받는 물량도 늘고 저희가 행사장에서 만드는 음식 종류도 늘어났어요.
초기에는 일손이 부족해서 교회분들이 많이 도와주셨어요. 첫 행사는 목사님께 부탁해서 교회 앞마당에서 행사를 진행했거든요.
안: 행사 비용은 어떻게 충당하나요? 수익 사업을 벌이나요?
최: 수익 사업을 매년 해요. 2년차 때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외교부가 진행한 공모전에 당선돼 지원금을 받았고요. 그 뒤로는 수익금을 내서 모아뒀다가 다음 행사 비용으로 써요.
수익사업으로는 매년 한 가지 음식을 팔아요. 2회에는 김치 버거, 작년에는 비빔밥을 만들어 팔았고요. 올해도 비빔밥을 팔아요.
이 밖에도 재외동포재단에 기부금을 요청하는 등 다른 방법도 찾습니다.
안: 일손이 부족했다고 하셨는데, 코펜하겐 김치 페스티벌 운영진이 몇 명이나 되나요?
최: 덴마크에서 김치 페스티벌을 열수 있던 건 제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어요. 팀원은 5명이에요. 저 빼고 4명은 입양된 한국인이에요. 처음에는 저와 종현 오빠가 시작했고, 나중에 킴이 합류했어요. 다른 팀원은 2년차때 킴이 연락해서 찾았죠.
각자 재능이 달라서 손발이 잘 맞아요. 회계 역할을 도맡는 친구도 있고요. 덴마크에서 김치 비즈니스를 하려는 킴은 쿠킹클래스를 열어 본 경험이 많아서 제가 못 하는 일을 할 수 있었죠. 이렇게 각자 역할을 다 할 수 있게 팀이 구성되지 않았다면 1년을 넘지 못했을 거에요.
안: 여러 사람이 부딪히며 일하다보면 힘들거나 즐거운 일이 많았을 것 같은데요.
최: 팀원 5명이 처음 모였을 때 굉장히 감동적이었어요. 저는 제가 하고 싶던 일이니까 하는 거고, 킴도 뜻이 맞으니 같이 시작한 건데, 다른 사람들은 그 정도는 아니잖아요. 행사 하는 게 사실 굉장히 힘든데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주는 팀원들에게 고마워요.
자원봉사자분들께도 감사하죠. 일해오던 분들은 아시지만, 음식 재료를 매번 냉장고에서 들고 옮기는 게 여간 힘든 일이 아니거든요. 그런데 어느 누구도 힘들다고 내색도 안 하고 일해주셔서 매순간 감사해요.
재미있었던 점은 직접 보기 전에는 미처 몰랐던 점을 경험적으로 깨달았다는 거에요. 유럽 사람은 떡 씹는 질감을 싫어한다고 들었는데, 막상 떡볶이를 주니 다들 좋다고 하더라고요. ‘너무 달아’, ‘너무 매워’, ‘어떤 재료가 더 들어가면 좋겠어’라고 피드백을 주는 사람도 있고요. 이런 점이 제게 큰 도움이 됐지요.
또 덴마크 가기 전에는 입양인을 잘 몰랐거든요. 고민한 적도 없고요. 그런데 워홀 가서 처음으로 입양인을 많이 알게 됐죠. 종현 오빠가 입양인 관련 자원봉사를 많이 해서 옆에서 많이 보고 배웠죠.
제가 입양인 관련 행사에 참가했던 경험을 돌이켜볼 때 아쉬움이 있었어요. 한국인이 행사를 만들면 덴마크 사람 몇 명이 참가하거나, 덴마크 입양인이 행사를 만들어 한국인 몇 명이 참석하는 형식이었거든요. 김치 페스티벌은 입양인과 한국인이 기획부터 함께 하는 거죠. 네트워크가 훨씬 커질 수있다는 생각도 했어요. 실제로 만나서 함께 일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이런 분들께 도움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성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직접적으로 빚을 갚는다기 보다는 내가 받은 만큼 다른 사람에게 돌려줄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죠.
코펜하겐김치페스티벌2016 행사 포스터
안: 올해 행사는 어떻게 치를 계획인가요?
최: 올해는 김장 문화를 덴마크인이 직접 체험할 수 있도록 꾸릴 계획이에요. 직접 만들어 집에 가져가는 거죠. 금∙토∙일 3일이 행사인데, 공식 시작은 토요일이거든요. 토요일에 오프닝 스피치 끝나면 인절미를 칠 거에요. 떡매도 샀어요.
어른 손 잡고 나온 아이들을 위한 행사가 부족했다고 생각했어요. 어른들은 이미 충분히 재밌거든요. 시식도 많고 영어로 설명 들을 것도 많고요. 행사를 하다 보니 아이들을 위해 크래프트 많이 하고 싶었는데 구조적인 어려움이 었었어요. 일이 너무 몰렸거든요. 올해는 부스마다 한 명씩 치밀하게 배치해서 아이들이 태극기 팔찌나 팽이 같은 물품을 만들며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하려고요. 아이들 대상 행사에는 덴마크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붙어요.
안: 몇년 전부터 한국에서는 한식 세계화를 기치로 내세우고 정부 차원에서 힘쓰고 있어요. 그런데 막상 한식을 외국에 알린다며 하는 일이 만날 “Do you know 김치?” 묻는것 뿐이라고 고깝게 보는 시선도 있는데, 덴마크 최초로 김치 페스티벌을 연 사람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최: 저는 그렇게 묻지 않아요. 음식이든 공연이든 저는 자국 문화를 전파할 때 제일 중요한 점은 최소한 한 번은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김치를 알 필요는 없지만 한 번은 먹어봐야 한다는 거죠. 먹어보고 마음에 들면 그 다음에 “그게 김치야” “몸에는 어떻게 좋아” 이런 식으로 접근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김치 페스티벌로 한식 세계화에 나서겠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그냥 덴마크라는 나라, 크게 보면 북유럽 지역에서 많은 사람이 먹고 즐기며 한국을 알릴 수 있는 행사가 되길 바라는 정도예요.
안: 앞으로 계획은 어떤가요?
최: 행사 이름을 김치 페스티벌이라고 정한 이유는 처음에 강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기 때문이에요. 여러가지 요소가 김치와 맞아 떨어졌지요.
사람들이 김치만 들으면 음식 축제라고 생각하는데, 정확히 얘기하면 한국 음식 문화 축제가 될 수 있다고 봐요. 그렇게 만들고 싶어요. 지금은 제가 대학원에 다니는 중이라 시간을 온전히 쏟아붇기 힘들지만 공연 쪽을 키우고 싶어요.
예를 들어 작년에 우연히 일정이 맞아 김치 페스티벌에서 공연해줬던 한국 사물놀이 공연팀이 올해도 공연해주겠다고 약속했거든요. 이런 공연이 지속적으로 일어날 수 있게 하고 싶어요. 사물놀이나 한국 무용 같은 것을 덴마크 한복판에 보여주는 거죠.
저희가 돈을 드리면서 초청하기엔 비용이 너무 크기 때문에 많은 것을 준비해야겠지만, 더 많은 시간이 생긴다면 이런 부분을 더 잘해보고 싶어요.
코펜하겐김치페스티벌 기획자 최하영 씨 (사진: 여지형)
코펜하겐 김치 페스티벌 2016
일자: 2016년 6월24일~26일
장소: 덴마크 코펜하겐 토브할렌(Torvehallerne) 시장
웹사이트: http://www.cphkimchifestival.d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