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펜하겐 도시재생] 쓰레기 태우는 발전소를 관광 명소로, 아마게르 바케

발전소는 대표적인 혐오시설이다. 쓰레기를 태워 전기와 온수를 만드는 열병합발전소라면 더 말할 나위도 없을 터. 그런데 발전소를 도리어 관광 명소로 바꾼 곳이 있다. 올 가을 덴마크 코펜하겐에 문 열 아마게르 바케(Amager Bakke)다. 거대한 기간시설을 공업시설로 박제하지 않고, 오히려 코펜하겐 시민에게 사랑받는 공간으로 꾸며 곧 대중에 문 열 아마게르 바케에 다녀왔다. 멀리서 본 아마게르 바케 열병합발전소(ARC 제공, Justin Hummerston 촬영)  

평범한 기능, 비범한 발상

아마게르 바케가 처음부터 비범한 프로젝트는 아니었다. 아마게르자원센터(ARC∙Amager Resource Center)는 40년이 지나 한계 수명이 임박한 열병합발전소를 대체할 차세대 발전소를 새로 지어야 했다. 부지와 시설, 규모는 확정된 상태. 문제는 디자인이었다. ARC는 코펜하겐 어디서나 보일 정도로 거대한 발전소 건물이 흉물스러운 공업 시설로 낙인 찍히기를 원치 않았다. 그래서 건축 공모전을 열었다. 공모전에 내세운 조건은 한 가지였다.
"발전소 옥상 공간 중 적어도 20~30%를 대중에게 개방한다."
여러 건축회사에서 다양한 설계안이 들어왔다. 그 중 단연 돋보이는 제안이 있었으니, 도전적인 디자인으로 유명한 비야케 잉겔스 그룹(BIG∙Bjarke Ingels Group)의 작품이었다. 다른 설계안은 정방형 발전소 건물은 놔둔 채 지붕 일부를 옥상 공원을 만드는 식상한 수준이었다. BIG은 달랐다. 발전소 여러 동을 한 동으로 키 순서로 이어 붙이고 그 위에 스키 슬로프를 얹었다. 지붕 위에 스키 슬로프를 조성한 구조물은 여태껏 없었다. 안전 문제로 규제 당국에서 건설 승인을 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였다. 하지만 이사진은 만장일치로 BIG의 설계안을 채택했다. 옥상을 십분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고 발전소라는 기피 시설을 도리어 관광명소로 만든다는 대담한 발상이 이들을 사로잡았다. 수네 세이뷔에(Sune Scheibye) ARC 커뮤니케이션 컨설턴트는 모든 설계안 가운데 BIG이 단연 돋보였다고 말했다. “날씨는 스키 타기 최적인데, 구릉지나 산이 없는 덴마크에 우리가 직접 산을 짓는다는 발상이 이사진을 사로잡았습니다.”

발전소, 스키 슬로프를 지붕에 얹다

아마게르 바케는 코펜힐(Copenhill)이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하다. 너비 200미터, 높이 85미터에 거대한 미끄럼틀을 닮은 독특한 형태와 시민 친화적 용도 덕분이다. 산 하나 없는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에 발전소 건물을 인공 산(hill)으로 선물했다. BIG 설립자 비야케 잉겔스(Bjarke Ingels)는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아마게르 바케가 예술과 과학을 융합할 것이며 “기간 시설이 응당 어때야 한다는 대중의 인식을 바꿀 것”이라고 말했다. 아마게르 바케 옥상 스키 슬로프 및 산책로 조성 개념도 (SLA 제공) 건물 위에 경사로를 얹어 덴마크에서 유일하게 알파인 스키를 즐길 수 있는 스키 슬로프를 마련했다. 덴마크에서는 매년 53만 명이 스키를 타러 스웨덴, 노르웨이, 알프스 등으로 떠난다. 아마게르 바케는 덴마크에 첫 스키 슬로프를 선사한다. 경사도에 따라 네 단계로 코스를 나눈다. 가장 아래인 초보용 녹색 코스는 14~18%로 완만한 반면, 전문가용 검은색 코스는 최대 경사도가 45%에 달한다. 스키 슬로프에는 사계절 스키를 탈 수 있도록 특수 마감재를 설치한다. https://youtu.be/_Na4BviXEbA 덴마크스키연합회(Danmarks Skiforbund)는 아마게르 바케 스키 슬로프 덕분에 스키가 값비싼 스포츠라는 인식을 바꿀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한발 더 나가면 국제 경기에 나가는 스키 덴마크 선수가 연습 장소로도 활용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키장을 비롯해 발전소 주변 여가시설을 운영하는 민간기업 코펜힐은 올림픽 등 국제 경기에 출전한 선수에게 평생 멤버십을 제공할 계획이다. 85미터 높이 북쪽 수직 벽 중 일부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인공 암벽으로 꾸민다. 10미터 폭인공 암벽에는 진짜 산처럼 다양한 장애물을 설치해 실제 암벽을 오르듯 즐길 수 있다. 스키나 암벽 등반을 못 한다고 산을 즐기지 못하는 건 아니다. 스키 슬로프 옆에는 3천 제곱미터 녹지(tagparken)를 확보해 역시 덴마크에서 유일한 등산로를 조성한다. 10가지 등산 경로를 만들고, 코펜힐 사업에 자금을 보탠 덴마크 지자체 10곳을 상징하도록 꾸민다. 이 중에는 짧은 질주 구간과 긴 훈련용 코스도 있다. 바위에서 바위 사이를 뛰어 넘어야 하는 모험적인 코스도 만든다. 등산 중에는 당연히 쉼터도 필요할 터. 등산로마다 다수 쉼터를 조성해 잠시 숨 돌릴 곳도 제공한다. 아마게르 바케 꼭대기에는 유해 가스 대신 수증기 고리를 만들어 뿜는 125미터 높이 굴뚝이 있다. 그 아래에 코펜하겐 시내가 한 눈에 들어오는 전망대 카페가 자리 잡는다. 전망대에 오르는 엘리베이터는 무료다. 등산로도 무료다. 동네 뒷동산 오르듯 그냥 걸어 오르면 된다. 아마게르 바케 발전소를 소유한 코펜하겐을 비롯한 5개 지방자치단체가 덴마크 최초 인공산에 공공성을 요구한 덕분이다. 아마게르 바케 옥상 여가시설 설치 개념도(SLA 제공) 높은 곳이 싫다면 굳이 지붕 위로 오르지 않아도 된다. 아마게르 바케 아래는 스키 장비숍과 대여점, 카페 등이 들어선 스키 센터도 생긴다. 아마게르 바케에서 내려다 본 코펜하겐 시내 전경. 가운데 국회의사당 및 총리실로 쓰는 크리스티안보르가 보이고 그 오른편으로 시청 종탑이 보인다 (안상욱 촬영) https://vimeo.com/196548451  

기본에도 충실하게,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열병합발전소

독특한 외형 때문에 더 주목받지만 사실 아마게르 바케는 쓰레기를 에너지와 자원으로 만드는 열병합발전소다. 대중의 눈을 사로잡는 겉모습을 한꺼풀 벗겨보면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열병합발전소라는 아마게르 바케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2017년 3월30일 가동을 시작한 아마게르 바케는 코펜하겐과 인근 지역에서 나온 폐기물 가운데 금속 등 재활용 가능한 자원을 제외한 쓰레기를 매년 40만 톤까지 소각한다. 1시간에 25~35톤 꼴이다. 쓰레기를 태울 때는 섭씨 950~1100도에 달하는 열이 발생한다. 이 열로 고압 증기를 만들어 전기를 만들거나 온수를 끓여 지역난방수로 공급한다. 증기를 만들 때 에너지 효율은 90%에 달한다. 쓰레기 1톤당 2.7메가와트시(MWh) 난방열 혹은 0.8메가와트시 전기를 만든다. 1년으로 환산하면 전기 63메가와트(MW) 또는 난방 에너지 247메가와트까지 만드는 셈이다. 전기 요금과 난방 수요를 실시간으로 반영해 전기 혹은 온수를 만든다. 16~18만 가구가 아마게르 바케에서 에너지와 난방을 공급받는다. https://vimeo.com/230434119 쓰레기를 태운다니, 미세먼지가 나올까 걱정할지 모르겠다. 아마게르 바케는 최첨단 시설을 구비해 현존하는 가장 깨끗한 열병합발전소로 태어났다. 각종 필터와 정화 기술로 오염물질을 최대한 적게 만든다. 이산화황(SO₂) 배출량은 99.5%, 질소산화물(NOx) 배출량은 90% 가량 줄였다.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 감소분은 연간 10만톤이 넘는다. 123미터 높이 아마게르 바케 굴뚝에도 오염 물질을 제거하는 장치가 돼 있어 사실상 굴뚝에서는 연기가 나오지 않는다. 거의 수증기 뿐이다.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는 오염 물질을 거의 배출하지 않는 아마게르 바케의 특징을 보여주는 장치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굴뚝에서 나오는 수증기를 모아뒀다 탄소를 1톤씩 배출할 때마다 도넛 모양으로 만들어 하늘로 쏴 올리자는 것이었다. 비야케 잉겔스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제작진에게 수증기 도넛의 상징성을 이렇게 설명했다.
"이런 프로젝트가 전 세계에 모범이 될 수 있어요. 청정 기술로 유토피아 같은 일이 가능하자는 걸 보여주는 거죠. 도넛 모양의 증기가 바로 그 유토피아의 상징이죠."
담배 연기로 고리를 만들어 쏘듯 청정함을 시민이 직접 볼 수 있게 하는 장치를 만드는데 기술진을 골머리를 썩었다. 결국 기술적인 문제는 해결했지만, 아직 재정적 문제가 남았다. 굴뚝 위에 증기 고리 생성 장치를 설치하고 유지하는 비용을 누가 낼지, ARC와 BIG은 아직 합의하지 못했다. 아마게르 바케 굴뚝은 아직 고리 대신 평범한 증기를 내뿜는다. https://vimeo.com/40229132 쓰레기를 태우면 당연히 재 같은 찌꺼기, 슬라그(slag)가 나온다. 보통 쓰레기 무게 중 17~20%가 슬라그로 남는다. 슬라그 안에는 쓰레기뿐 아니라 자갈, 모래, 금속 등 타지 않는 물질도 함께 남는다. 재활용센터라는 본업에 충실하게, ARC는 슬라그도 허투루 다루지 않는다. 슬라그는 별도 저장탑에 모아 분류한 뒤 숙성 과정을 거쳐 재활용되는 물질을 걸러낸다. 이렇게 슬라그 200킬로그램(kg)마다 10~15킬로그램 정도 재활용 가능한 금속을 얻는다. 금속을 걸러내고 남은 슬라그는 자갈처럼 건설 현장에 재료로 쓴다.  

거대한 기간시설을 시민 품으로

아마게르 바케는 2025년까지 탄소 중립 도시로 거듭나겠다는 코펜하겐시의 친환경 전환 정책의 일환이다. 열병합발전소는 풍력과 태양광 발전 등 재생 에너지를 보완하는 역할을 한다. 도시에서 생긴 폐기물을 재활용하고 남은 것을 태워 바람이 안 불거나 궂은 날 부족한 전력 생산량을 공급한다. 아마게르 바케가 대체하는 이웃 열병합발전소도 아직 석탄과 바이오매스를 함께 태우지만, 2020년부터는 석탄을 완전히 버리고 바이오매스만 태우는 탄소 중립 발전소 BIO4로 거듭난다. 두 발전소는 코펜하겐시가 쓰는 난방 에너지 중 98%를 공급한다. 에너지원인 발전소가 도심에서 고작 3킬로미터(km) 떨어진 곳에 자리잡은 덕분에 코펜하겐의 지역난방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인 축에 속한다. 하지만 이 점이 인근에 사는 시민에게는 불편할 지도 모를 일이다. ARC는 발전소가 혐오시설이라는 사실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기피시설을 교육과 여가의 장으로 탈바꿈해 아마게르 바케라는 유일무이한 시민친화적 기간시설을 코펜하겐 시민과 덴마크 국민에게 선사했다. 건축가 비야케 잉겔스는 아마게르 바케 프로젝트의 요지를 다음처럼 설명했다.
"발전소가 아주 깨끗해서 이산화탄소를 극소량만 배출하고 독성 물질이 전혀 없는 증기가 굴뚝에서 나온다면, 말 그대로 깨끗한 산 속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뜻이니까요. 발전소를 멀리하지 않고 오히려 즐길 수 있는 거죠."
수네 세이뷔에 ARC 컨설턴트는 2016년 문 연 이래 7천 여 명이 아마게르 바케를 방문했다고 밝혔다. 이 중 4천 여 명은 코펜하겐 등 인근 학교에서 견학 온 학생이다. 고작 200미터 떨어진 아파트에 사는 주민은 반년에 한 번씩 아마게르 바케를 단체로 찾는다. 운영 책임자가 직접 이들을 맞아 시설을 보여주고 발전소의 활동을 설명한다. 발전소 인근 여가시설이 문 열 올 가을부터는 더 많은 사람이 아마게르 바케를 찾을 것으로 보인다. 여가시설 운영업체 코펜힐은 매년 30만 명이 스키장 등을 이용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근 아파트와 아마게르 바케 발전소(안상욱 촬영) 아마게르 바케를 세우는데는 6억7000만 달러(7216억 원)가 들었다. 이런 대규모 예산이 들어간 기간시설을 수십 만 시민이 애용하는 곳으로 만들자는 대담한 발상이 곧 실현된다. 올 10월 코펜하겐에 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열병합발전소 위에서 스키를 타보는 건 어떨까.

편집자 주: 공사 지연으로 아마게르 바케 개장은 2019년 초로 연기됐습니다. 코펜힐은 이르면 3~4월 중에 운영을 시작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전했습니다(2018년 11월23일 추가)

참고자료

 

[연재] 덴마크 코펜하겐 도시 재생

  1. [인트로] 천년고도, 행복 도시로 거듭나다
  2. 바다 위에 콘테이너로 지은 학생 기숙사, 어반 리거
  3. 쓰레기 태우는 발전소를 관광 명소로, 아마게르 바케
  4. “이민자를 이웃으로” 주민이 직접 꾸린 다문화 공원, 수페르킬렌
  5. 사람이 먼저인 도시를 그리다, 겔
  6. [인터뷰] “살기 좋은 도시 만들려면 지속가능한 삶을 가장 쉬운 생활 양식으로 만들라” – 겔 파트너 디렉터 크리스티안 빌라센
  7. [아웃트로] 위기의 도시, 친환경 미래 도시로 거듭나다
이 콘텐츠는 도시 콘텐츠 스타트업 어반플레이가 후원하고 덴마크 전문 미디어 NAKED DENMARK가 제작해 양쪽 매체에 공동 게재합니다. 덴마크 도시 재생 연재는 어반플레이 미디어 아는동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