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에 덴마크는 캠핑 천국이 된다. 낮에도 섭씨 30도를 쉬이 넘지 않고, 비도 많이 오지 않는 쾌적한 날씨 덕분에 여름이 오는 낌새만 차려도 덴마크인은 밖으로 나선다. 최근 들어 비교적 안전하고 깨끗한 북유럽이 관광지로 떠오른 덕분에 덴마크도 덩달아 관광 호황기를 누린다.
하지만 관광객이 몰리는 여름이 늘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다. 호텔은 물론이고 에어비엔비(AirBnB)까지 여름만 되면 숙박비가 두 배로 치솟는 탓에 관광객은 물론이고 덴마크인조차 여름 휴가철에 덴마크를 여행하기란 녹록치 않다. 그런데도 코펜하겐에서는 여름 호텔에 빈방을 찾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덴마크인 수백 명이 뭉쳤다. 정원 달린 집을 가진 집주인 900여 명이 무상으로 여행객에게 정원을 빌려주겠다고 덴마크 전역에서 나섰다. 올 5월7일 페이스북 비공개 그룹으로 시작한 비영리 프로젝트 ‘내 뒤뜰을 쓰세요'(Brug min baghave)다. 아직 웹사이트조차 만들기 전이지만 6주 만에 1만7천 여 명이 가입했다.
‘내 뒤뜰을 쓰세요'(Brug min baghave) 회원만 열람 가능한 비공개 지도. 덴마크 전역에 정원을 빌려주는 집을 확인할 수 있다. 숲 대피소나 지역 길라잡이가 어디 있는지도 등록돼 있어 덴마크를 도보 여행하는 사람은 쏠쏠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뒤뜰을 내놓은 퓐섬(Fyn) 주민 미켈 라스무센(Mikkel Bach-Rasmussen)은 6월5일 저녁 하룻밤 손님을 받았다며 또 다른 손님을 맞고 싶다는 기대감을 <TV2>와 인터뷰에서 밝혔다.
"마음을 열고 도움이 필요한 이를 돕는 일입니다. 저는 그러길 즐겨요. 우리는 일상 속에서 낯선이에게 마음을 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모르는 사람을 만나고 그들에게 도움과 온정을 베푸는 거죠."
"잔디밭 외에 모든 것은 덤" 화장실도 기대하지 말라
여행객은 ‘내 뒤뜰을 쓰세요' 구글 지도에서 정원을 빌려줄 집주인을 찾아 연락하고 찾아가면 된다. 텐트는 직접 가져가야 한다. 임대료도 낼 필요 없다. ‘내 뒤뜰을 쓰세요’ 프로젝트에 주소를 등록한 집주인은 무상으로 여행객이 자기 정원에서 묵도록 동의했기 때문이다. 대신 여행객은 집주인에게 정원 한 편을 빌려주는 것 외에 어떤 혜택도 요구할 수 없다. 화장실이나 욕실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안 주고 안 받는 단촐한 하이킹 문화가 프로젝트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손님으로서 당신이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잔디 한 평뿐입니다. 그 밖에는 덤입니다." - 페이스북 그룹 안내글 발췌
덴마크인만 대상으로 삼는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모든 정보가 덴마크어로 기재돼 있기에 덴마크인이 아니라면 참여하는데 제약이 있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에서도 몇몇 집주인이 이 프로젝트에 동참해 뒤뜰을 내놓긴 했다.
"환대에 돈으로 보답하는 사람은 없다" 비영리로 운영할 것
‘내 뒤뜰을 쓰세요’ 프로젝트를 시작한 페르닐레 카스(Pernille Kaas)는 기대를 훨씬 웃도는 반응에 고무됐다고 <TV2>와 인터뷰에서 말했다.
"압도적인 반응이 쏟아져 제 상상을 훌쩍 뛰어넘어 버렸습니다. 저는 뒤뜰에 하룻밤 묵을 도보여행객 100명 정도를 기대했거든요."
첫 걸음부터 이미 폭발적인 관심을 확인한 페르닐레 카스는 이미 다음 단계로 나섰다. 하얀 하트 안에 녹색 발자국이 찍힌 스티커를 만들어 배포했다. 도보 여행객이 우체통에 이 스티커를 붙인 우체통을 발견하면 그 집이 ‘내 뒤뜰을 쓰세요’ 프로젝트에 동참했다는 사실을 알고 신세를 질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출처: ‘내 뒤뜰을 쓰세요'(Brug min baghave) 페이스북 그룹
페르닐레 카스는 ‘내 뒤뜰을 쓰세요’ 프로젝트를 전적으로 비영리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강조했다.
"이 프로젝트는 순수한 환대를 바탕으로 합니다. 다른 사람의 환대에 돈으로 보답하려는 사람은 없지요. 우리는 이 프로젝트를 비영리로 운영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