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을 어른이 미리 차단해 버리면 학생은 배울 기회를 빼앗겨P: 사물함 이름표를 직접 그려 붙여 놓은 모습이 귀여웠다. 아이들이 글짓기 한 내용을 벽에 붙여 놓았다. 내용은 볼품 없을 지라도 당당히 벽 위에 전시된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복도에서 학생이 공부할 수 있도록 책상을 배치한 점을 보고 소수 학생도 배려한다고 느꼈다. 학년에 맞게 책상 크기가 다르다. 아주 기본적인 부분인데 한국에서는 이조차 갖추지 않은 곳이 많다. 학생의 집중하는 시간에 맞춰 오전에는 길게, 오후에는 짧게 수업하는 아이디어가 훌륭했다. 북유럽 학교 중에서 요리를 가르치는 학교는 이미 본 적 있지만, 이렇게 실전처럼 가르치는 학교는 처음 봤다. 수업이 아닌 거의 직업을 체험하는 수준이었다. 가장 놀라운 점은 학생이 만든 음식을 점심 급식으로 제공한다는 것이다. 자기가 만든 음식을 다른 사람이 먹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뿌듯할까. 학생이 손을 다쳤을 때 크게 놀라지 않는 교사의 담담함이 신선했다. 학생이 놀라지 않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것 같았다. 크게 다치지 않았으면 바로 장갑을 끼고 하던 일을 마무리하도록 책임감을 알려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과학적 원리를 자연스레 알려주고 실습 전 책으로 공부하고 요리를 하니 이해가 더 쉬울 것 같다. 과학 지식을 먼저 알고 실습을 하는 것과 실습을 하고 과학적 지식을 아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효과적일지는 시험해 보고 싶다. 모든 수업은 먼저 시범을 본 뒤 학생이 실습하는 순서로 진행했다. 셰프는 조리를 주도하지 않았다. 학생이 요리하도록 돕고 지켜본다. 교사가 코치 같은 역할을 했다. 요리 수업 시간을 집중 조명하느라 다른 수업을 못 봐 아쉬웠다. 프로그램 구성 면에서는 다른 북유럽 국가와 차이점를 부각하려고 덴마크편에서 요리 수업만 강조한 것 같았다. 학생이 배워야 할 경험이라면 조력자가 주위에 있을 때 직접 경험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작은 위험만 있어도 사전에 차단해 버린다. 위험을 어른이 미리 차단해 버리니 학생은 위험을 통해 배울 기회를 박탈 당한다. 세월호 참사 후 학교에서는 야외활동에 많은 제약이 생겼다. 야외활동을 무조건 차단할 것이 아니라 그런 상황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긴급하게 바다에 빠졌을 때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 지를 가르쳐야 하는데 방향이 잘못됐다. 학교 울타리를 없앤 점도 혁신적이었다. 학부모와 학생이 학교에서 자연스럽게 놀 수 있도록 하고, 울타리 대신 스스로 놀이의 경계선을 배우도록 하는 모습에서 사소한 것에도 신경을 많이 썼다고 느꼈다.
어디서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인식만으로도 가양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셈이다M: 중고등학생 시절 나는 '공부만 하면 되는 사람'처럼 여겨졌다. 그래서 점점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교에서 하는 대청소 같은 일이 쓸모 없고 귀찮게만 느껴졌다. 덴마크 학생이 음식을 만들고, 그 요리를 전교생이 먹고, 먹은 학생은 식사한 자리를 치우는 모습을 보면서 학생은 학교 안에서 교육받는 존재가 아니라 학교를 꾸려가는 존재라는 점을 일깨운다. 어디서든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주는 것만으로도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는 셈이다. 아침에 90분 수업하고 30분 쉬는 구성을 보니 학생이 중심이었다. 나는 10분 쉬는 시간은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화장실 다녀오면 끝나버리는 쉬는 시간에 정말 쉴 수 있는지 의문이다. 30분이라면 잠깐 눈 붙이고 상쾌한 기분으로 일어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요리' 자체가 교육적으로 다양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한다. 창의성과 감수성을 모두 길러주고, 그 안에서 원칙도 지킨다. 나만의 것을 만들어 내도록 하는 가장 좋은 수업 방식 같다. 인상적이었던 점은 셰프 4명이 학생을 지도하는 모습이었다.중요한 조리 행위는 다 학생이 한다. 맛이 괜찮은지도 학생이 판단하게끔 한다. 학생에 판단에 맞춰 셰프는 보조한다. 칼에 다치면서 부엌이라는 공간과 칼질의 위험성을 몸소 깨닫게 한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리뷰를 하는 것도 좋았다. 그 모습마저도 수동적인 학습자가 아닌 수업시간의 주도자로 만들어 주었다. 조승연 작가가 요리 수업에 담긴 철학을 잘 설명했다. 국가마다 중시하는 수업·가치가 다르다. 덴마크가 유독 요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듯, 핀란드도 스웨덴도 다른 배경이 있겠다고 생각했다. 교육에는 한 나라의 철학과 역사와 방향성이 모두 담겨있기에 나라마다 역사나 문화도 따로 공부하고 싶다. 더불어 우리는 왜 지금 같은 제도와 문화를 갖게 됐는지도 이야기 나누고 싶다. 학교 교육과 가정 교육은 밀접하다. 집에서 하는 일을 학교에서도 하고, 학교에서 하는 일을 일상에서도 한다. 공교육의 속도와 기업의 속도에 차이가 크다. 공교육 과정을 마치고 기업에 가면 처음부터 다시 배워야 한다. 그만큼 동떨어졌기 때문이다. 한국 학생의 삶과 연계된 교육은 무엇일지 고민된다. 그들은 학교 수업을 마친 뒤에도 다른 학교에 있기 때문이다.
덴마크인에게 학교란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곳. 우리에게 학교와 교육은 무엇인가?H: 이 학교는 요리하는 것과 먹는 즐거움을 교육하는 학교다. 1년에 두 번씩 돌아가며 학생이 요리 준비과정 전반에 참여하는 수업을 진행한다. 덴마크에서 이런 교육을 혁신적으로 여긴다는 점이 의아하고 신기했다. 어릴 때 요리하는 수업이 있을 때면 학생 모두 설레고 신났던 기억이 난다. 소고기 패티를 만들어 햄버거·샌드위치를 만들었던 기억이 난다. 학교에서 몇 년에 한 번 있는 이벤트 같은 시간이었다. 그저 공부를 안 하고, 점심이 아닌 시간에 간식을 먹을 수 있는 재미있는 날 정도로 여겼다. 아마게르펠레드스콜레 요리 수업은 조금 다르다. 학생에게 즐거운 경험을 주는 것 이상이다. 제대로 조리 도구를 갖춘 주방에서 담당 학생이 전교생의 점심 식사를 준비한다. 실습 전 수업에서 재료의 특성을 배우고, 실습에서는 조리 도구를 어떻게 다루는지를 배우고, 보조가 아닌 주연으로 직접 자기 역할을 수행한다. 수업은 요리를 만드는데서 끝나지 않는다. 음식을 배식하고 뒷정리하는 일도 모두 담당한다. 무엇보다 인상 깊었던 점은 학생과 교사의 태도였다. 학생은 진짜 칼로 재료를 손질하거나, 위험한 주방 도구를 직접 다룬다. 어리다고 무조건 못하게 막기보다는, 어떻게 하는지 보여주고 스스로 하도록 격려했다. 요리 중에 손을 다치기도 하지만, 그걸 큰 문제로 여기지 않는다.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다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배울 기회로 본다. 우리 눈에는 다소 위험하게 보일지라도, 배워야 할 것이라면 학생이 직접 경험하면서 배우는 편이 가치 있다고 학생과 교사, 학교와 학부모가 합의한 것으로 보였다. 학교뿐 아니라 가정에서도 이런 철학으로 아이를 양육한다. 용기, 협력, 책임감, 다양성, 창의력 등 측정할 수 없지만 덴마크에서 중시하는 가치를 자연스럽게 가르치는 방식으로 보였다. 덴마크인에게 학교란 행복하게 사는 법을 배우는 곳이었다. 우리에게 학교와 교육은 무엇일까?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교육이란 무엇일까?
휘게를 즐기는 한국인이 많아지길 바란다T: 이 학교 학생은 수업의 일환으로 요리 수업을 받지 않는다. 직접 학우의 점심을 책임질 요리를 수업 시간에 배웠다. 기술가정 교사가 아니라 셰프가 학생을 지도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셰프의 역할도 독특했다. 모든 과정을 진두지휘하지 않고, 학생을 옆에서 돕는 퍼실리테이터 역할만 할 뿐이었다. 음식을 만들고, 배식하고, 뒷정리하기까지 모든 식사 과정을 학생이 주도하는 것이 요리 수업이었다. 이 수업을 마친 학생은 큰 성취감을 느낄 것 같다. 음식이 우리에게 온 모든 과정을 학생이 직접 경험하니, 음식을 고마운 마음으로 먹을 것 같다. 덴마크인은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일상 대화를 나누며 삶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는 일을 중시하는 것 같다. 많은 한국인은 과중한 업무량과 바쁜 일정 탓에 가족과 시간을 보내지 못한 채 일에 파묻혀 산다. 좋지 않은 경제 상황이 한국인이 휘게를 즐기기 어려운 이유가 아닌가 싶다. 덴마크는 여유롭고 편해 보인다. 나라 자체에서도 힐링과 따뜻함이 느껴진다. 각박한 상황 속에서도 진정한 휘게를 누릴 수 있는 한국인이 많아지길 바란다.
플래닛비 임상혁의 덴마크 교육 답사기
- 나는 왜 덴마크에 가는가
- '초딩'도 직접 전교생 급식 요리하는 덴마크 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