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아마존에서 마음에 드는 상품을 찾았는데, ‘판매 불가’라며 살 수 없는 경우를 본 적 있을 테다. 쇼핑몰이 해외 구매를 막아둔 탓이다. 12월3일부터는 이런 일이 사라진다. 유럽연합(EU) 회원국 온라인 쇼핑몰은 고객의 국적이나 거주지에 따라 주문을 거부하거나 다른 웹사이트로 보내는 일(redirect)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DR>이 12월3일 보도한 소식이다.
새 EU 지역차단 규제법, 12월3일부로 시행
12월3일 시행된 새 EU 지역차단 규제법(Geoblocking rules)은 EU 회원국 기업이 지역에 따라 소비자를 차별하지 못하도록 못박는 법이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EU를 온라인 단일 시장으로 묶으려는 디지털 전략의 일환으로 지역차단 규제법을 개정했다. EU 전체 온라인 시장을 단일 시장으로 통합하면 EU 시민이 더 많은 제품을 더 저렴한 가격에 살 길이 열린다.
새로 시행된 법에 따르면 EU권 기업은 다른 EU 회원국 소비자에게 판매를 거부할 수 없다. 명시적 동의 없이 고객을 국가마다 다른 웹사이트로 다시 보내도 안 된다. 타 EU 회원국과 다른 약관이나 조건을 고객에게 내거는 것도 금지된다. 한마디로 EU 회원국 고객을 자국 고객과 마찬가지로 응대하라는 것이다. 반 옐쇠(Vagn Jelsøe) 소비자연합회(Forbrugerrådet Tænk) 부회장은 “더이상 고객을 차별하지 말라는 얘기”라며 <DR>과 인터뷰에서 새 지역차단 규제법 시행을 반겼다.
“렌트카 회사를 써 본 사람은 압니다. 스페인에서 차 한 대를 빌리고 싶어도 가격이 더 비싼 덴마크 지사를 통해서 빌려야만 했죠. 이런 일은 이제 끝났습니다.”
"고객이 곧 수입업자, 잘 알아보고 사야 해"
덴마크 상공회의소(Dansk Erhverv) 로네 라스무센(Lone Rasmussen) 마케팅 매니저는 새 EU 지역차단 규제법 시행 후로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을 살 때 소비자가 한층 더 주의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새 법은 여러분이 곧 수입업자가 된다는 걸 뜻합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쇼핑몰에서 산 물건이 덴마크 표준과 안전 기준에 맞는지 확인할 책임을 진다는 겁니다.”
쇼핑몰에서 전등을 살 때도 덴마크 전기 규격에 맞는지 확인해야 하고, 옷을 사도 남유럽과 북유럽이 다른 규격을 쓰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고 라스무센 매니저는 조언했다.
그는 “새 법이 모든 온라인 쇼핑몰이 덴마크 표준이나 상황을 알든 모르든간에 덴마크 소비자에게 상품을 팔도록 강요한다”라며 교육 활동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난감한 덴마크 쇼핑몰
새 EU 지역차단 규제법은 당연히 덴마크 온라인 쇼핑몰에도 적용된다. 덴마크 온라인 쇼핑몰도 12월3일부터 EU 회원국 소비자에게 물건을 팔아야만 한다. 덴마크 홀스테브로시(Holstebro)에서 덴마크 디자인 제품을 파는 쇼핑몰 Livingshop.dk을 운영하는 욘 페데르센(John Virum Pedersen)은 <DR>과 인터뷰에서 EU 전역 고객과 맞닥뜨린 상황이 “달갑지 않다”라고 말했다. 지금까지는 주문을 처리하고 포장하는데 너무 많은 시간이 드는 해외 구매건을 거부해왔지만 앞으로는 그럴 수 없게 됐기 때문이다.
“한 가지 예를 들어봅시다. 저는 노르웨이에서 150크로네(2만5330원)어치 상품을 주문하는 건은 거절했어요. 하지만 앞으로는 이런 건도 무조건 승낙해야 합니다. 새 규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상황을 야기하는지 볼만 할 겁니다.”
"덴마크인도 덴마크 쇼핑몰 안 쓸 것”
덴마크는 EU권에서 부가세율이 가장 높은 나라다. 모든 물건 소비자가에는 25%가 부가세(meromsætningsafgift)로 덧붙는다. 덴마크 온라인 쇼핑몰에서 파는 물건도 마찬가지다. 새 EU 지역차단 규제법이 온라인 시장에서 국경을 없애준 덕분에 비싼 부가세율을 감내하기 싫은 덴마크 소비자가 덴마크 쇼핑몰 대신 해외 온라인 쇼핑몰만 이용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로네 라스무센 덴마크 상공회의소 매니저는 새 지역차단 규제법이 "덴마크의 높은 부가세율을 회피하도록 당당히 뒷문을 열어젖힌 것과 진배 없다”라며 “덴마크에서 세금을 내고 고용하는 기업은 불공정한 조건으로 경쟁해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쇼규모 쇼핑몰은 EU 시장 전체 감당하기 어려울 수도"
소규모 온라인 쇼핑몰한테는 시장 확대가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있다. EU 전역을 포괄하기에는 너무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라스무센 매니저가 말했다.
“상품에 하자가 있으면, 반송하는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겁니다. 거대 유통사라면 모를까, 작은 온라인 쇼핑몰이라면 반송비가 무척 비쌀 수 있습니다. 고객 서비스에도 문제가 생깁니다. EU 안에는 20개 공식 언어가 있습니다. 여기 대응하지 못해 고객에게 나쁜 경험을 야기하면, 쇼핑몰은 나쁜 평을 받을 수 밖에 없겠지요.”
유럽연합집행위원회는 2년 안에 새 지역차단 규제법의 효과를 측정하고 EU를 단일 시장으로 만드는데 어떤 효과를 가져왔는지 평가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