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최대 은행 단스케뱅크(Dansk Bank) 최고경영자(CEO)가 9월19일 사임했다. 단스케뱅크 에스토니아 지사에서 러시아 비자금이 세탁되는 것을 막지 못했다는 도의적인 책임 때문이다. 단스케뱅크 주가는 기자회견 당일 4% 가량 떨어졌다.
단스케뱅크는 9월19일 내부 감사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2007년부터 2015년 까지 에스토니아 지사가 돈세탁에 이용되는 일을 누구도 예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돈세탁 사건은 행동주의 기업가 빌 브라우더(William Browder)가 덴마크와 에스토니아 당국에 거액의 러시아 비자금이 단스케뱅크 에스토니아 지사를 통해 세탁됐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불거졌다.
조사결과는 예상보다 처참했다. 단스케뱅크는 고객 1만5천 명의 결제 950만 건을 조사했다. 규모는 2천억 유로(262조5천억 원)에 달한다. 이 중 얼마가 러시아 비자금인지 특정하는 게 불가능하다고 단스케뱅크는 결론 내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최대 1500억 달러(168조3000억 원)가 러시아나 전 소비에트연합(소련) 관련 기업과 관련된 자금이라고 18일 보도했다.
토마스 보르겐(Thomas F. Borgen) 단스케뱅크 CEO(단스케뱅크 제공)
토마스 보르겐(Thomas F. Borgen) 단스케뱅크 CEO는 자체 조사결과를 발표하며 “에스토니아 돈세탁 사건에서 단스케뱅크가 책임 완수하는데 실패했다는 사실이 자명하다”라며 사의를 밝혔다.
“비록 외부 법무법인이 실시한 감사에서 제가 법적 책임을 완수했다는 결론이 나왔지만, 제가 사임하는 편이 모든 이해관계자에게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부정한 소득을 특정하지 못한 단스케뱅크는 대담한 조치를 약속했다. 단스케뱅크 이사회는 2007년부터 2015년까지 에스토니아 지사에서 비거주민 고객한테 번 수입(gross income)을 돈세탁을 비롯해 국제금융범죄를 예방하는 독립 재단에 기부하기로 결정했다. 기부액은 15억 크로네(2638억 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기부금이 3분기 지출 내역으로 잡힌 탓에 단스케뱅크 2018년 예상 수입은 180~200억 크로네(3조1653억~3조5170억 원)에서 160~170억 크로네(2조8136억~3조 원)로 줄었다.
인수합병 중 돈세탁 창구 입수하고 방치
단스케뱅크가 러시아 비자금 세탁 창구로 전락한 까닭은 에스토니아에 진출하며 이미 돈세탁에 쓰이던 은행을 인수했기 때문이다.
단스케뱅크는 2007년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에 33개 지사를 둔 핀란드 보험업체 삼포그룹(Sampo Group)에서 삼포뱅크(Sampo Bank)를 인수하며 에스토니아에 진출했다. 이 때 에스토니아 지사에서 넘겨받은 고객 중 에스토니아 주민이 아닌 사람이 상당수 있었다. 사전에 거래한 기록도 없던 이들은 당국에 신고하지 않고 거액을 주고 받았는데도, 단스케뱅크 에스토니아 지사는 손 놓고 있었다.
단스케뱅크는 “에스토니아 지사가 자기 문화와 시스템을 내세우며 그룹의 다른 계열사보다 너무 독립적으로 운영돼 그룹에서 적절히 통제되거나 관리받지 못했다”라고 책임을 인정했다. 뒤늦게 문제를 깨달은 단스케뱅크는 2015년에야 에스토니아 비거주민 계좌를 정리했으나 때는 늦었다.
8월 초 덴마크 특별금융국제범죄검찰(SØIK∙Special Financial and International Crime)은 단스케뱅크가 심각한 국제 경제 범죄에 연루돼 조사 중이라며 기소 여부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덴마크인 3분의 1 이상이 이용하는 덴마크 최대 은행이자 북유럽 2대 은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