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 소고기에 '기후세' 부과 검토
덴마크 정부가 소고기를 비롯해 기후위기에 큰 영향을 미치는 농축산물에 기후세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한다. 농축산업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정책의 일환이다.
덴마크인 세계 평균보다 2배 많은 탄소 배출
기후세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은 친환경 싱크탱크 콘시토(Concito)가 8월28일 '덴마크의 글로벌 소비 배출량' 보고서에서 촉발됐다.
콘시토 연구진은 보고서에서 덴마크인 1명이 1년 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CO2)가 13톤(t)으로, 세계 평균 6톤보다 2배 이상 많다고 지적하며 덴마크가 기후위기 시대에 인류의 길라잡이로 자처하려면 먼저 덴마크인의 소비 패턴을 바꿀 심대한 변화가 필요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소고기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가 전체 식품의 배출량 가운데 55%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소고기 대신 닭고기나 돼지고기를 먹기만 해도 탄소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진이 보고서에 담은 제안을 덴마크 정부도 귀담아 들은 것으로 보인다. 예페 브루스(Jeppe Bruus) 덴마크 조세부장관이 기후에 가장 영향을 많이 미치는 상품에 세금을 추가로 물릴 "가능성"이 있다며 기후세 도입 가능성을 시사했기 때문이다. 같은 사회민주당(Socialdemokratiet) 대표이자 현직 총리인 메테 프레데릭센(Mette Frederiksen) 의원이 지난 2022년 총선 TV 토론에서 서민이 평소 먹는 식품에 세금을 더 물리길 원치 않는다고 했던 발언과 반대 입장이어서 덴마크 정부가 기후 정책 방향을 선회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홀로 아이 셋을 키우는 비혼모가 축구 경기에 다녀오면 소고기 소스 스파게티를 만듭니다. 저는 서민 음식이라고 생각하는 상품군에 세금을 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총선 당시 '소고기 소스'(kødsovsen)는 기후위기 대응보다 재선 가능성에 목매는 메테 프레데릭센 총리를 비판하는 단어로 회자됐다.
농축산업 기후세 도입은 기정사실...어디에 물리느냐는 갑론을박
앞서 덴마크 정계는 올 겨울께 농축산업에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 배출량을 감축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탄소세 도입 여부를 검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하지만 기후세를 농축산업 전체 주기 중 어디에 물릴 것이냐는 의견은 여러 갈래로 나뉜다.
콘시토의 제안은 최종 소비 단계에 소비자에게 기후세를 징수하는 것이다. 부가가치세처럼 최종 소비자가 부담하는 소비세를 신설하면 소고기 가격이 올라간다. 소고기가 비싸지만 덴마크 소비자가 소고기를 덜 먹는다. 이로써 궁극적으로 덴마크인의 소비 행태를 교정하는 효과를 노리는 안이다.
이 안에 찬성하는 급진자유당(Radikale Venstre)은 기후세를 신설할 경우 다진 소고기 1킬로그램(kg)은 10크로네(2천 원), 안심 1kg은 40크로네(8천 원) 가량 비싸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급진자유당 사미라 나바(Samira Nawa) 기후대변인은 "친환경을 선택하는 쪽이 더 쉬운 길이기도 하도록 사회에 합의를 이끌어 나아가는 것이 정계의 임무"라며 "가장 배출량이 많은 상품에 세금을 더 물리는 방안을 정부가 도입하는데 의회 과반수가 뜻을 모으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소비세로 확보한 세수 일부는 저소득층에 조세 부담을 덜어주는데 활용하자고 급진자유당은 제안했다. 소득 상위 1% 덴마크인이 나머지 99%보다 10배 많은 이산화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에 기후세가 소득불평등을 보전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농장에 세금 물려야 친환경 농법으로 전환해"
보수당(Konservative)과 적녹연맹당(Enhedslisten)은 기후세를 슈퍼마켓 매대가 아니라 농장에 물려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른 산업군과 마찬가지로 농축산업에도 생산 단계에서 세금을 징수하지 않으면 조세 체계가 너무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농장에 세금을 물려야 더 환경 친화적인 소고기 생산방법을 도입할 유인책이 된다는 점도 근거다.
하지만 생산자가 추가 조세 부담을 소비자에게 전가할 경우 결국 소비자만 부담을 떠안게 될지 모른다는 점이 한계로 지적된다.
"기후세 신설시 일자리와 경제도 고려해야"
현 연립정부를 주도하는 사회민주당은 농축산업에 탄소세를 도입하는데는 찬성하지만, 경제 전반과 친환경 전환에 미칠 영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다소 보수적인 입장을 밝혔다. 사민당 기후대변인 레아 베르멜린(Lea Wermelin)은 "기후세 도입은 올 가을께 반드시 다룰 사안"이지만 "그때까지 손 놓고 기다린다는 얘기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역시 중도 연립정부를 구성한 자유당(Venstre)도 당장 기후세 징수 대상을 확정하기는 어렵다는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배출량에 비례한 통합기후세 신설해야"
자유연맹당(Liberal Alliance)은 소고기 등 특정 상품에만 소비세를 붙일 게 아니라 탄소배출량에 비례해 모든 상품에 세금을 징수하는 통합기후세를 꾸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식품위원회 소속 카르스텐 바흐(Carsten Bach) 의원은 "소고기만 특별히 다룰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같은 원칙을 운송업계에도 적용해야 합니다. 항공이용객에게 세금을 물리거나 교통에 세금을 매겨야 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기후에 미치는 영향력에 따라 세금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해결책은 단일한, 모든 산업을 아우르는 세금이 되겠죠. 소고기를 먹든 비행기를 타든, 자가용을 몰든 상관 없이 이산화탄소 배출량당 동일한 세금을 징수하는 겁니다."
"세금은 부족해, 육류 생산 80% 줄여야"
급진적 친환경 정책 실현이 당 설립 목표인 대안당(Alternativet)은 소고기에 세금을 더 물리는 논의가 시작된 점은 반겼으나 실효성 있는 정책을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덴마크는 농업 수출량이 많습니다. 세금만 들여다 보면 안 됩니다. 가축 수도 줄여야 합니다."
대안당 기후대변인 테레사 스카우에니우스(Theresa Scavenius)의원은 국내 소비세 신설만으로는 전 세계에 얽힌 탄소배출을 끊어낼 수 없다며 육류 생산량 자체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안당은 2022년 육류 생산량을 80% 이상 감축하자고 제안한 바 있다.
"소고기가 탄소중립에 결정적 걸림돌은 아냐"
덴마크민주당(Danmarksdemokraterne)은 소고기에 소비세를 붙여서 정치인이 덴마크인의 식탁까지 관여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후위기 대응은 필요하지만 저소득층의 식단도 고려해야 한다며 유보적 입장을 밝혔다. 리세 베흐(Lise Bech) 덴마크인민당 기후대변인은 소고기가 2050년 탄소중립이라는 정책 목표를 달성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요소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덴마크민주당은 자유당에서 이민통합부 장관을 역임하며 반이민 정책을 펼치다 직권 남용 혐의로 재판장에 오르며 당을 탈퇴한 잉에르 스토이베르(Inger Støjberg) 의원이 2022년 창당한 정당이다.
참고 자료
- Høje forbrugsudledninger svækker Danmarks rolle som grønt foregangsland, CONCITO, 2023년 8월28일
- Danmarks globale forbrugsudledninger, CONCITO, 2023년 8월28일
- Regeringen åbner for afgifter på oksekød og andre klimabelastende varer, <DR>, 2023년 8월29일
- Skal du betale ekstra for din hakkedreng? Her er svarene fra partierne, <DR>, 2023년 8월29일
- Ellemann vil ramme forbrugerne: CO2-afgiften bør havne i køledisken, <DR>, 2023년 8월29일
- Én person fra den rigeste procent af Danmark udleder 10 gange så meget CO2 som en gennemsnitsdansker, <DR>, 2022년 9월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