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가 창업선진국으로 도약한 비결?
창업가가 가장 대접받는 나라, 덴마크
덴마크는 작은 나라다. 국토는 한국의 20%, 인구는 10%에 불과하다. 하지만 기업 환경과 창업 환경은 전세계가 주목할 정도로 뛰어나다. 세계은행이 2014년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덴마크는 창업 환경이 세계 189개국 가운데 다섯 번째로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미래가 보장되지 않은 분야에 과감히 뛰어드는 기회형 창업 비중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덴마크인이 창업가를 보는 사회적 인식도 세계에서 가장 긍정적이다. 한국은 어떤가. 부모 절반 이상이 자녀의 창업을 반대한다. 취업문이 좁아지니 먹고 살 길을 찾다보니 창업을 고려하는 사람이 늘기는 했다. 하지만 이들 중 대다수는 외식업이나 소매업 등 일반 서비스업과 통신?문화콘텐츠 등 지식 서비스업 같이 진입장벽이 낮은 분야만 노린다. 위험을 감수하는 기회추구형 창업은 21%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운데 최하위권이었다. 한국 청년에게 창업은 도전이 아니라 취업의 차선책이라는 뜻이다.경제 위기 타개책으로 스타트업 육성 꼽아
2008년 세계를 휩쓴 미국발 경제 위기는 북유럽 강소국 덴마크에도 불어닥쳤다. 경제 성장률은 곤두박질치고, 국제 경쟁력은 약화됐다. 덴마크는 노동자에게 높은 임금을 주는 나라로 유명하다. 당시 월평균 임금은 3만6000크로네, 미화로 7,200달러 정도였다. 높은 임금은 수출로 먹고 살던 덴마크 기업에 큰 타격을 줬다. 1년 사이에 3,500곳이 넘는 기업이 도산했다. 당시 덴마크 물가 수준은 유럽연합(EU) 평균보다 38% 이상 높았다. 낮아진 국가생산성을 어떻게 끌어올릴지가 덴마크의 미래를 좌우할 국가적 과제로 떠올랐다. 덴마크 정부는 당시 위기의 원인이 덴마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보고 대책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경제 위기를 극복하려면 기초 체력을 길러야 한다고 판단했다. 덴마크 내수 시장은 작다. GDP가 세계 최고수준이라고 해도, 인구가 560만 명밖에 안 되기 때문이다. 내수 시장이 작기 때문에 해외 경제 동향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내수 시장이 작아 수출로 먹고사는 점은 덴마크도 한국과 비슷하다. ‘미국?유럽이 기침하면 독감에 걸린다’는 비유는 덴마크나 한국 모두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내수 시장을 절대적으로 키울 수 없다면 이런 상황을 극복할 방법은 없었다. 피할 수 없다면 남은 카드는 정면돌파 뿐이었다. Startup Ecosystem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CC BY-SA Startupcommons.org) 덴마크 경제를 유연하고 역동적으로 개편할 방도로 덴마크 정부는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는 길을 선택했다. 대기업보다 일자리를 더 많이 만드는 중소기업이 많아져 다양한 사업을 벌인다면 세계 경제의 부침에도 유연하게 대응하리란 노림수였다. 특히 고용창출 효과가 높은 성장형 기업을 많이 만드는 데 집중했다. 성장형 기업(High-growth enterprise)이란 3년 이상 매출이나 근로자수가 매년 20% 이상 성장하는 회사를 말한다. 방금 회사를 세운 스타트업은 보통 3년 동안 4개 일자리를 창출하지만 같은 기간 동안 성장형 기업은 평균 15개 일자리를 만든다. 덴마크 정부는 창업 생태계를 활성화해 스타트업이 창업 초기 역경을 극복하고 성장형 기업으로 발돋움한다면 덴마크 경제가 유연하면서도 역동적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봤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덴마크 정부는 구체적인 정책을 마련했다. 스타트업 육성 및 기업가 정신 확산을 국가 전략으로 꼽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도입했다. 미국 등 창업 선진국의 모범 사례를 벤치마킹하고 덴마크의 특수성을 고려해 정부 주도로 교육?재무?자문?기술이전 제도를 마련했다. 기업성장부, 고등교육과학혁신부, 외교부 등 중앙부처 세 곳이 핵심 역량을 바탕으로 역할을 분담했다. 기업성장부는 각각 기업가 정신 함양, 고등교육과학현신부는 혁신, 외교부는 마케팅 정책 업무를 도맡아 추진했다. 대학교 8곳이 모두 국립이라는 점을 십분 활용해 덴마크 정부는 대학생이 자연스레 기업가 정신을 함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고, 이들이 창업에 나설 경우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조직과 제도를 꾸렸다.10년지대계 창업 육성 정책 빛을 발하다
10년 동안 창업 육성 정책을 연구하고 세우고 실행하고 평가하고 보완하는 과정을 반복하자 덴마크 기업 환경은 크게 개선됐다. 매년 1만4000곳이 넘는 스타트업이 새로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들 가운데 80% 이상이 1년 이상 살아남았다. 5년 미만 스타트업이 낸 특허 출원건수는 OECD 회원국 가운데 가장 많았다. 벤처캐피탈(VC) 50여 개가 덴마크 스타트업에 마중물을 댄다. 창업가를 보는 인식도 세계에서 가장 긍정적으로 돌아섰다. 고위험 창업에 과감히 뛰어드는 기회형 창업 비중이 71%로 세계에서 가장 많다. 기업가 정신과 창업 기회도 세계에서 두 번째로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은행은 덴마크를 기업하기 좋은 나라 3위로 꼽았다. 덴마크에서 스타트업을 꾸릴 때는 단 4단계만 거치면 된다. 단 3일이면 새 회사를 세울 수 있다. 세계은행은 2016년 사업하기 보고서(Doing Business 2016)에서 덴마크가 휼륭한 규제 환경 덕분에 훌륭한 기업 환경을 일궜다고 추켜세웠다.덴마크의 예는 규제의 효율성과 질이 동반될 경우 어떻게 선순환하는지를 보여준다.덴마크는 명실상부한 창업 선진국으로 다시 태어났다.
덴마크의 성공 비결을 톺아보자
덴마크는 지난 10년 동안 경제 체질을 바꾸는 데 매진했다. 덴마크 경제를 괴롭히는 문제점을 똑바로 바라보고 근본적인 원인을 파악한 뒤에 병의 증세가 아닌 원인을 제거하는 처방을 도입했다. ‘창조경제’ 같이 화려하지만 공허한 구호를 소리높여 외치기보다 조용히 발걸음을 옮겨 구체적인 목표를 하나씩 달성해가는 길을 택했다. 실천과 평가, 반성과 실천을 체계적으로 실천했다. 지금 덴마크가 보여주는 화려한 모습 뒤에는 이런 뼈를 깎는 노력이 숨어 있다. ? 한국은 어떤가. 창업 생태계를 키워야 한다는 문제의식에는 많은 이가 동의한다.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가 한계에 부딪혔음을 모두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못 잡는다. 잿더미 속에서 한국 경제를 일으켜세운 방법론은 저성장 시대를 맞이한 지금은 오히려 부작용만 키우는 형국이다. 지금껏 겪어본 적 없는 상황에 정부 정책은 굳건한 방향성 없이 좌충우돌하고, 대기업은 몸사리기에 바쁘다. 태풍 속에서도 닻을 내리기보다 돛을 접고라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창업가가 한국에도 있다. 하지만 건전한 생태계가 조성되지 않은 한국 시장에서는 제 뜻을 펼치기가 쉽지 않다. Stars around Polaris (출처 : 위키미디어커먼즈 CC BY-SA Steve Ryan) 그렇다고 손 놓고 망망대해를 떠돌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두운 밤하늘 속에 별은 더 밝게 빛난다. 이제라도 밤하늘 속에서 북극성을 찾아내고 그곳을 향해 키를 돌려야 한다. 앞으로 한국보다 먼저 북극성을 찾아 떠난 덴마크의 항적을 톺아보고자 한다. 그들이 선진국이어서가 아니다. 경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킨 슬기와 지혜를 배우고자 함이다. 덴마크의 경험 속에서 한국 경제가 나아갈 항적을 찾아볼 수 있길 기대한다.참고자료
- 유럽 주요 대학의 창업인프라 심층연구 <창업진흥원>
- 청년창업에 대한 인식과 개선과제 조사 <대한상공회의소>
- An International Benchmarking Analysis of Public Programmes for High-growth Firms <OECD>
- ‘쉬운 해고’의 나라에는 △이 있다 <한겨레21>
- [‘기업형 국가’에서 배운다]<5·끝>마지막 관건은 사회적 합의 <동아일보>
- 핀란드, 프랑스, 덴마크 등 7개국이 말하는 글로벌 창업 생태계를 듣다 <벤처스퀘어>
편집자 주: 북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를 둘러보는 이 기획 콘텐트는 '안데르센의 유럽 표류기'라는 제목으로 은행권청년창업재단 D.CAMP 블로그에도 함께 게재합니다. D.CAMP에 올라간 글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