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가 틈새시장 절대 강자된 비법? 선택과 집중!
산업 시대 지진아, 기술 시대 우등생으로 거듭나다
덴마크는 산업 시대 지진아였다. 산업 분야에 매진하지 않고도 살 만 했기 때문이다. 세계적으로 산업혁명이 한창이던 19세기에도 덴마크는 농업국가였다. 국토 60% 이상이 농경지인 덴마크는 인구 대비 경작지 규모가 넓어 농사만 지어도 먹고 살 만 했다. 지정학적 위치 덕분에 봉이 김선달 노릇도 했다. 수도 코펜하겐이 북유럽과 유럽 본토를 잇는 해상 무역로의 출입구에 자리 잡은 터라 오가는 선박에 통행세만 물려도 가만히 앉아 큰 돈을 벌었다. 가만 있어도 먹고 살 만하니 굳이 산업구조를 개편하려 힘 쏟을 이유가 없었다. 덴마크가 산업시대로 접어든 것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다. 덴마크는 월등한 군사력을 갖춘 독일군에게 국토를 고스란히 내줬다. 사실상 무혈입성이었다. 독일군에게 덴마크는 노르웨이를 공격하기 위한 교두보였다. 덴마크에 공장을 세워 군수품을 보급하고 식량을 확보하는 게 독일군의 목표였다. 당시 국왕 크리스티안 10세가 독일군에 항복한 대신 자치권을 보장받는 등 나치 점령에 지혜롭게 대항한 덕분에 목숨과 자존심은 지켰지만, 나라를 고스란히 빼앗긴 상처는 숨길 수 없었다. 전쟁에서 진 독일군이 물러간 뒤 덴마크는 본격적으로 공업을 육성해 국력을 확충하기 시작했다. 산업화가 진행됨에 따라 덴마크에도 문제가 생겼다. 산업화 시대에는 노동력 확보가 가장 큰 과제로 떠오른다. 전통적 노동력인 남성 뿐 아니라 여성도 일을 하러 사회에 진출해야 했다. 이 때문에 가정 단위에서 해결하던 육아·교육·노인 부양·의료 등 문제가 사회적 과제로 떠올랐다. 이런 문제를 사회 전체 단위에서 공동으로 해결하는 구조를 갖추면서 덴마크는 복지사회의 기틀을 마련했다.석유 파동의 교훈을 실천으로 옮기다
경제 발전에 여념이 없던 1970년대에 각국은 에너지 문제라는 새로운 과제와 맞닥뜨렸다. 석유 파동 때문이다. 제4차 중동전쟁 때문에 석유 가격이 치솟자 산유국은 석유를 무기삼아 국제 무대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석유 가격이 요동치는 만큼 세계 경제도 뒤흔들렸다. 당시 덴마크 역시 석탄과 석유 등에서 나오는 화석 에너지에 절대적으로 의존했다. 99%가 화석 에너지였다. 덴마크 정부는 에너지원 확보와 더불어 미래 먹거리로 당시 불모지였던 재생에너지 분야에 주목했다. 1970년대 후반부터 풍력과 바이오에너지 등 신재생에너지 산업을 지원하고, 국책 연구개발(R&D)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특히 바람이 많이 부는 덴마크 기후에 안성맞춤인 풍력 발전에 집중했다. 석유 파동이 수습된 뒤 재생에너지를 향한 관심이 돌아선 뒤에도 덴마크 정부는 꿋꿋이 풍력 발전 등 재생에너지 분야를 육성했다. 이런 노력 덕분에 덴마크는 재생에너지 선진국으로 거듭났다. 덴마크는 2012년 전체 발전량 가운데 57%를 풍력 발전으로 조달했다. 2050년부터는 화석 에너지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재생 에너지만 쓸 계획이다.세계 풍력 에너지 시장 가운데 20%는 덴마크 차지다. 250개가 넘는 기업이 매년 150억 달러가 넘는 매출을 올리며 덴마크 경제의 한 축으로 활약하고 있다.5개년 계획으로 ICT 산업 육성하다
ICT 분야를 집중 공략한 것도 산업화에 뒤쳐진 덴마크 정부의 전략적 선택이었다. 정부가 주도하는 만큼 공공분야를 혁신하는 데서 출발했다. 1983년 ‘현대화 프로그램(Modernisation Programme)’을 시발점으로 공공 부문에 ICT 기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2002년에는 '전자정부를 향하여'(Towards 3-Government: Vision and strategy for the Public Sector in Denmark)라는 미래 전략을 발표하고 공공 부문이 IT 기술을 체계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업무 처리 절차를 개선하는 방안을 모색했다. 각종 정책을 도입해 민간 분야에 정보화에 나설 유인책을 제공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는 150조 원에 달하는 자금을 투입해 전국민 IT 활용도를 높이는 정책을 추진했다. 2008년에는 ‘의료 정보화 정책’(Connected Digital Health in Denmark)을 발표하고 2012년까지 국가 의료기관의 정보를 표준화하고 공공기관끼리 이를 공유할 수 있도록 했다.골리앗과 싸우지 않는 다윗
앞선 글에서 살펴본 대로 덴마크 내수시장은 미미하다. 그래서 덴마크는 일찌감치 국제 경제의 일원으로서 글로벌 감각을 갖춰야 했다. 경제대국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영리하게 굴어야 했다. 덴마크가 틈새시장에 집요하게 파고드는 이유다. 덴마크는 제조업 기반 국가는 아니다. 다른 선진국처럼 서비스 산업이 가장 발전했다. 전체 산업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19%, 1차 산업 비중은 4.4%에 그친다. 주요 산업은 제약, 풍력 발전, 식품가공업, 엔지니어링, 가구 제조, ICT 등이다. 인건비가 비싸기에 노동집약적인 생산시설은 해외로 이전하거나 외주로 넘기는 경우가 많다. 덴마크 현지에서는 디자인과 기술 개발 등 핵심 산업만 남겨두는 추세다. 덴마크 정부는 청정기술(Cleantech)과 ICT, 생명과학, 해양, 디자인, 식품 등을 중점 산업으로 선정하고 이 분야에서 성장 동력을 찾는 미래 계획을 세워뒀다. 청정기술과 ICT에 집중하는 이유는 앞서 살펴본 맥락대로다. 생명과학 분야에서 덴마크가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곳은 제약 산업이다. 세계 최고 수준 제약회사를 비롯해 130여개 생명과학 기업이 덴마크에서 활약한다. 덴마크 수도 코펜하겐과 스웨덴 남부 룬드 지역에는 유수 생명과학 기업이 둥지를 텄다. 그래서 이 지역은 메디콘밸리(Medicon Valley)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정부도 유서 깊은 과학 전문지 은 2013년 덴마크를 세계 생명과학 개발 분야를 선도하는 나라로 꼽았다.덴마크가 창업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배경은?
지금까지 덴마크가 독특한 산업 구조를 갖춘 역사적 맥락을 살펴봤다. 역사?환경적 요인을 고려해 '잘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한 덕분에 덴마크는 강소국으로 거듭났다. 1인당 GDP는 5만 달러가 넘는다. 한국의 2배에 가깝다. 특히 틈새분야에서 많은 기업이 세계적으로도 손꼽히는 경쟁력을 갖추고 활약한다. 다음 포스트에서는 이런 배경 지식을 염두에 두고 덴마크에 창업 생태계가 싹튼 토양을 집중적으로 파해쳐보자. 실패해도 생계 걱정 없는 사회복지 제도, 사업을 운영하기 유리한 비즈니스 환경, 정부의 체계적 지원 전략 등이 덴마크가 창업 선진국으로 발돋움한 배경으로 꼽힌다. 더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주에 계속하자.참고자료
- 유럽 주요 대학의 창업인프라 심층조사 <중소기업청>
- 덴마크 외교부 웹사이트
- "덴마크전력에너지의 57%, 풍력이담당” <오마이뉴스>
- 덴마크의 국가정보화 추진 전략 및 시사점 <정보통신정책연구원>
- 한국, 세계 정보통신기술 발전지수 세계 1위 재탈환 <연합뉴스>
- Energinet.dk 웹사이트
- 메디콘밸리 웹사이트
편집자 주: 북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를 둘러보는 이 기획 콘텐트는 ‘안데르센의 유럽 표류기‘라는 제목으로 은행권청년창업재단 D.CAMP 블로그에도 함께 게재합니다. D.CAMP에 올라간 글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