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짧습니다. 도전하세요."
구글 공동 창업자인 에릭 슈미트 구글 지주회사 알파벳 회장이 지난해 10월29일 한국을 방문해 남긴 말이다. 에릭 슈미트 회장은 “한국은 여러분 생각보다 창업하기 좋은 나라”라며 창업을 적극 독려했다.
▲2015년 10월29일 구글캠퍼스 서울 개관을 맞아 특별 강연에 나선 에릭 슈미트 알파벳 회장 (출처: 구글 캠퍼스서울 페이스북)
하지만 창업이 말처럼 쉬운 일인가. 십수 년 동안 답안지 속에서 정답을 골라내는 주입식 교육만 받으며 평범한 삶을 인생 최대의 목표로 살아온 한국인이 정답을 찾을 수 없는, 실패가 정상이고 성공이 비정상인 창업에 나서기는 퍽 어려운 일이다.
번뜩이는 아이디어와 도전 정신으로 무장했다고 해도 무작정 회사를 차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인생일대의 도전에 지도 한 장 없이 무턱대고 덤볐다가는 큰코 다치기 십상일 테다.
내 회사 차리고 픈 당신, 게임으로 예습해 볼까
창업을 꿈꾸지만 무엇을 준비해야 할 지 막막하다면 게임 한 판 즐겨봄이 어떨까. 무료 웹 게임 ‘스타트업 스피리츠(Startup Spirits)’ 속에서 플레이어는 10대 창업가가 돼 자기 만의 로봇 스타트업을 차린다. 부모님집 차고에 작은 공방을 차리고 이웃집 잔디를 깎아 재료비를 충당하는 창업 초기부터 기업 매각까지 모든 단계를 경험할 수 있다. 때로는 멘토가 조언을 건네기도 한다. 진짜 스타트업처럼 말이다.
스타트업 스피리츠는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게 목표가 아니다. 플레이어는 게임 속에서 과제를 완수하며 창업가가 갖춰야 할 덕목을 익힌다. 이 과정에서 창업이 무엇인지, 무엇을 공부해야 할지 느끼게 된다.
가볍고 유쾌하게 즐길 만한 게임이지만 내용은 단순하지 않다. 덴마크 비영리 창업지원기구 CIEL(Copenhagen Innovation and Entrepreneurship Lab)이 덴마크공과대학교(DTU)와 코펜하겐대학교(KU), 코펜하겐비즈니스스쿨(CBS)과 손잡고 만든 기업가 정신 교육용 게임이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게임을 시작하지"
스타트업 스피리츠를 즐기는데 최신형 컴퓨터는 없어도 된다. 인터넷에 접속할 수 있는 컴퓨터만 준비하자. 웹브라우저에서 게임이 실행된다. 구글 크롬은 안 된다. 게임을 실행하는데 필요한 플러그인인 유니티 웹 플레이어를 지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맥 사용자라면 파이어폭스나 사파리를 쓰자. 게임을 만든 곳은 덴마크지만 모든 게임은 쉬운 영어로 돼 있으니 안심해도 좋다.
스타트업 스피리츠 웹사이트에 접속해 ‘play now’ 단추를 누르면 게임창이 열린다. ‘new player’ 단추를 눌러서 아이디를 만들면 바로 게임을 시작할 수 있다. 이메일 주소 정도만 입력하면 된다. 학교 입력칸에는 기타(other)를 고르면 된다. DTU나 KU, CBS 학생이라면 랭킹에서 단체로 경쟁할 수 있다. 입력한 성별에 따라 여성 또는 남성 캐릭터로 게임을 진행한다.
게임을 시작하면 간단한 프롤로그가 나온다. "2012년 강남스타일 녀석은 어떻게 세상을 뒤흔들었지? 나한테 그런 일은 생기지 않을 거야. 나는 그냥 기계 덕후일뿐이니까.” 남 얘기 같지 않다.
낙담한 주인공은 우연히 학교에 강의를 온 성공한 기업가를 만난다. 누가 봐도 그 잡스인데 이름은 ‘Jobes’란다. 믿어주자. 잡스의 강연에서 영감을 받은 주인공이 자기 집 차고에 회사를 차리기로 결심한다.
프롤로그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게임이 시작된다. 시기는 가까운 미래. 대도시 인근 주거지구에 주인공이 산다. 집에서 창업하니 집이 곧 본사(HQ?Headquarter)다.
게임 진행방식은 간단하다. 주인공이 차린 로봇 스타트업에서 제품인 로봇을 생산해 시장에 내다 팔며 회사를 키워나가는 것이다.
로봇을 만들 때는 크게 두 가지 원료가 든다. 재료(Materials)와 도구(Tools)다. 로봇마다 두 원료가 소모되는 비율이 다르다. 재료와 도구는 가격도 한꺼번에 확보해둘 수 있는 재고량도 다르다. 두 원료를 적절히 소모해가며 로봇을 만들어 상점(Hardware Shop)에 내다 팔고, 그 돈으로 다시 원료를 사서 로봇을 만든다.
초반에는 원료 살 돈이 모자란다. 그러면 이웃집에 가서 잔디를 깎아주면 된다. 일정시간 동안 마냥 기다려야 하지만 그래도 창업 초기에 소중한 마중물을 길러올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버그 같지만 잔디를 깎으면서 동시에 로봇을 만드는 것도 된다. 일을 두탕 뛰면서 가욋돈을 벌면 더 빨리 초기 단계를 벗어날 수 있다.
적당히 여윳돈이 생기면 기술을 개발한다. 기술을 어느 정도 개발하면 고급 로봇을 만들 수 있다. 고급 로봇은 만드는데 더 많은 원료와 시간이 들지만, 더 비싼 값에 팔린다. 아주 초반에 원료값을 충당할 수 없는 시기만 벗어나면 로봇을 만들어 파는 게 잔디깎기보다 더 많은 돈을 번다.
어느 정도 기술을 개발하다 보면 피드백 포인트(Feedback Point)가 필요한 시기가 온다. 시장에서 내 제품을 사줄 고객의 요구를 파악해야 한다는 뜻이다. 연구실(Research Center)을 찾아가 돈을 주고 시장조사를 의뢰하면 피드백 포인트를 얻을 수 있다. 다른 요소는 고정돼 있지만 시장조사에는 약간 임의성이 가미돼 있다. 고객이 내 제품을 어찌 평가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이리라. 더 많은 연구비를 쏟아부으면 더 높은 확률로 시장조사에 성공해 피드백 포인트를 받는다. 낮은 단계보다 높은 단계에서 돈이 몇 배로 들고 시간도 더 오래 걸리지만 얻는 피드백 포인트 총량은 가장 돈을 많이 쓸 때가 가장 많다. 시장조사 성공 확률은 파워업(Power ups)에서 높일 수 있다.
파워업은 창업가 자신의 능력을 계발하는 곳이다. 제품과 연구, 사업 세 가지 분야로 나눠져 있다. 레벨이 오를 때마다 얻는 별 모양 파워 포인트(Power Point)를 써서 능력을 얻는다. 자금이 달리는 빨리 초반을 벗어나고 싶다면 사업 분야에 먼저 포인트를 쓰자. 파워 포인트가 1개만 소모되는 3단계까지만 올려도 로봇 판매가가 35% 늘어난다. 이 정도만 되도 돈 들어오는 것에 신경 안 쓰고 원료와 상품 재고 관리만 하게 된다.
상품을 만들어 내다 팔거나 과제를 완수하면 스타트업 가치(Startup Value)를 얻는다. 이 점수로 플레이어끼리 순위를 다툰다. 나는 100등이다.
게임 자체가 그리 어렵지는 않다. 파산 같은 위기 없이 회사는 계속 성장한다. 큰 분기점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무엇을 선택하든 상관 없다. 분기점이 무엇인지는 밝히지 않겠다. 직접 게임을 즐기면 자연스레 만나게 될 테니 말이다. 모든 과제를 마치면 게임은 끝난다.
기업가 정신, 게임으로 배우자
제작진은 경영 전공이 아닌 대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스타트업 스피리트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학생들이 창업에 나섰을 때 실제로 겪을 일을 게임 속에서 전반적으로 미리 경험해 보고 진로를 설계하도록 돕는 게 이 게임의 궁극적인 목표다. 제작진은 대학 교육 과정에 스타트업 스피리트를 접목하면 즐겁게 기업가 정신을 가르칠 수 있다고 자부했다.
그러니 막연함 속에서 헤매지 말고 지금 스타트업 스피리츠에 접속하자. 조금만 시간을 투자하면 공짜로 창업 개론 수업을 들을 수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재미도 있으니 금상첨화 아닌가.
▲쫘좌좐. 성공한 창업가의 기개.jpg
편집자 주: 북유럽 스타트업 생태계를 둘러보는 이 기획 콘텐트는 '안데르센의 유럽 표류기'라는 제목으로 은행권청년창업재단 D.CAMP 블로그에도 함께 게재합니다. D.CAMP에 올라간 글은 여기서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