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희의 영화관] 이기적 인간의 마을 '도그빌'
가녀리고 연약한 그레이스는 목에는 무거운 쇠바퀴가 달린 족쇄를 차고 있다. 그레이스는 마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일한다. 짓궂은 아이들은 쇠바퀴에 올라타 그녀를 놀리기 일쑤다. 밤이 되면 도그빌 사내들이 집으로 찾아와 그레이스의 몸을 탐한다. 비참한 모습을 보고도 도그빌 주민 어느 누구도 그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그레이스에게 족쇄를 채운 이가 바로 도그빌 주민들이기 때문이다.
그레이스는 도그빌을 찾은 낯선 방문객이었다. 그레이스를 경계하던 척은 어느날 그에게 말한다. “이 마을은 속부터 썩었어.” 도시를 떠나 시골 마을 도그빌에 정착한 척은 이미 이 마을이 겉보기와 다른 곳임을 느꼈을 테다.
그레이스는 살인과 폭력으로 물든 도시에서 도망쳐 우연히 찾은 산골짜기 마을 도그빌에 정착하고 싶었다. 주민들의 따뜻한 환대가 그를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도그빌은 아름다운 동화 속 마을이 아니었다.
그레이스가 가진 것 없이 쫓기는 신세라는 사실이 드러나자 도그빌 주민은 더 이상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 도그빌에 그레이스를 찾는 수배 전단지가 내걸리자 주민들은 그레이스를 숨겨주면서 법을 어긴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힌다. 그들은 날이 갈수록 커지는 죄책감을 상쇄할 더 큰 대가를 바란다. 애초에 자신을 받아준 주민들에게 보답하려는 뜻에서 그레이스가 거들기 시작한 마을 일은 고된 노동으로 변질된다. 그레이스는 더이상 손님이아니라 노예가 된다.
참다 못한 그레이스는 도그빌을 떠나려고 마음 먹는다. 그러자 그의 호의 덕분에 한층 편히 살던 주민들은 그녀에게 족쇄를 채운다. 자신이 맘껏 부릴 노예가 도망가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볼 노예주가 어디 있겠나. 그레이스가 찬 족쇄는 이기심에 눈 멀어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는 인간의 추악함을 보여준다.
인간의 이기심은 끝이 없다. 이기심은 약자를 향한 폭력으로 표출됐다. 어느날 예쁜 마을 처녀 리즈가 그레이스를 찾아와 고백한다. 늘상 자기를 훔쳐보는 도그빌 남자들의 시선을 벗어나고 싶어 그레이스를 받아주는데 찬성했다고 말이다. 처음 '선량한 시민'으로서 그레이스를 도그빌에 숨겨주기로 결정한 이유도 어쩌면 순수한 연민과 동정이 아니라 각자의 이기적인 이유 때문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피해자 그레이스는 주민들의 이 잔인한 행동을 모두 참고 이해하는 성자일까. 그레이스의 아버지는 폭력 조직의 두목이다. 그는 수하를 부려 살인을 일삼는다. 그레이스는 자신을 괴롭힌 도그빌 주민의 마음을 다 이해한다고 아버지에게 말하지만, 아버지는 그레이스가 오만하다고 소리친다. 그렇다. 어쩌면 그레이스도 자기가 주민보다 선량하다는 오만함에 사로잡혀 그들이 저지르는 온갖 폭력을 참고 넘어가려 했던 것은 아닐까. 끝까지 도그빌 주민을 이해한다던 그레이스마저 결국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권력으로 그들을 심판한다. 그레이스 역시 힘으로 본인의 이익을 취하는 '이기적 인간'일뿐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J5-LqwUHTaM
<도그빌>을 보며 인간의 추악함에 혀를 내두르던 내게 물었다. 만일 내가 도그빌 주민이었다면 그레이스에게 족쇄를 채우지 않았을까. 족쇄보다 더 추악한 짓을 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레이스는 내 평화로운 일상을 깨뜨린 눈엣가시였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레이스였다면 도그빌 주민을 심판할 기회가 생겼을 때 모두 용서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버지를 보자마자 복수해 달라고 빌었겠지 싶다. 라스 폰 트리에 감독은 <도그빌>이라는 작품으로 관객에게 자신을 돌아 볼 기회를 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는 누구 목에 이기심이라는 족쇄를 채워두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