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 방 사건'으로 한국에서 성범죄를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뜨겁다. 특히 미성년자까지 범행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공분이 모인다. 청와대 국민청원 웹페이지에는 엄격한 처벌과 용의자 신상 공개 등을 요구하는 청원이 다수 올라와 도합 400만 명이 넘는 사람에게 지지를 얻었다.
이에 덴마크에서 최근 가장 큰 논란을 불러 온 미성년자 성범죄 사건에 어떤 처벌이 따랐는지 돌아봤다.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도 있으나, 가해자가 미성년자나 노인이라고 처벌이 가볍지 않은 점은 주목할 만해 보인다.
돈 주고 아동음란물 ‘주문’한 노인에 징역 12년
글로스트루프(Glostrup)지방법원은 은퇴한 뒤 브뢴비(Brøndby)에 살며 인터넷으로 아동 음란물을 구매한 덴마크인 남성에게 2017년 5월23일 징역 12년형을 선고했다.
범인은 자택에서 인터넷으로 필리핀 아동 음란물 제작자에게 돈을 주고 상습적으로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도록 조장했다. 그가 돈을 입금하고 특정 행위를 주문하면 필리핀에서 실시간으로 아동을 학대하는 모습을 화상 채팅으로 보여줬다. 아동음란물을 ‘주문’한 횟수는 5년 간 346차례에 달했다.
범인은 아동을 성적으로 학대하라고 주문한 이유가 스스로 부양할 돈을 줘 아이들을 돕고 싶었기 때문이라는 터무니 없는 주장했으나 법원은 개의치 않았다. 피고인이 직접 아동을 학대하지는 않았지만 법원은 아동 성폭력 처벌법을 적용해 판결 당시 70세로 고령인 피고인에게도 실형을 선고했다.
코드 네임 ‘우산' 덴마크 사상 최대 아동음란물 유통 사건
2018년 1월 한 뉴스가 덴마크를 뒤흔들었다. 경찰이 1000명이 넘는 미성년자를 아동음란물 배포 혐의로 기소한 것이다. 덴마크 사상 최대 아동음란물 유포 사건인 일명 '우산 사건'(umbrella sag)이었다.
페이스북은 2015년 덴마크 청소년이 페이스북 메신저로 아동음란물을 유통한다는 신고를 받았다. 누군가의 집에서 15세 여성이 젊은 남성 4명과 성관계를 맺는 동영상 2점과 사진이 덴마크 청소년 사이에 퍼진다는 신고가 반복돼 접수됐다. 페이스북은 2017년 말 미국 수사기관에 이 사실을 알렸고, 사건은 유로폴로 이관됐다.
덴마크 경찰청(Rigspolitiet)은 아동음란물 배포자를 색출하려고 전국 지방경찰청 및 국립사이버범죄센터(NC3)와 협력해 국내외에서 용의자를 추적했다. ‘우산’이라는 작전명 아래 덴마크 사상 최대 아동음란물 유통 사건을 본격적으로 수사하기 시작했다.
2018년 1월15일 덴마크 경찰청은 국내외에서 용의자 1005명을 적발해 아동음란물 유통 혐의로 기소했다. 우산 사건을 수사한 북부셸란지방경찰청 라우 티게센(Lau Thygesen) 경감은 “이 사건은 피고인이 많을 뿐 아니라 규모도 매우 크고 복잡해 수사에 오랜 기간이 걸렸다”라고 설명했다.
피고인 대다수는 두어 차례 음란물을 공유한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수백 차례씩 공유한 피고인도 있었다. 페이스북에서 이들이 주고 받은 메시지는 5천 건이 넘는다. 아동음란물 유포 혐의로 기소된 청소년의 처벌 수위는 가볍지 않다. 구속 기간은 20일 안팎으로 짧지만, 2년 동안 전과 기록이 남는다. 또 아동 성범죄자 명부에 10년 이상 등록돼 교사나 운동 코치 등 아동 청소년과 연관된 직장에 취직이 금지된다.
라네르스지방법원(Retten i Randers)은 2018년 2월5일 우산 사건으로 기소된 피고인에게 첫 판결을 내렸다. 20세 남성 피고인의 유죄를 인정하고 30일 구금형을 선고했다. 또 영상에 나온 여성 피해자에게 배상금 1만 크로네(180만 원)를 지급하라고 판시했다.
피고인은 2015년 12월6일부터 2016년 5월9일 사이 페이스북 프로필과 메신저로 아동음란물을 12명에게 공유한 혐의로 기소됐다. 피고인은 음란물을 공유한 혐의는 인정했으나, 영상에 나온 사람이 미성년자인 줄은 몰랐다고 주장했다. 이 판결은 우산 사건의 시범 판결 9건 중 첫 재판으로 기소된 피고인 1005명의 양형 기준이 됐다. 지금까지 수백 명이 혐의를 인정 받아 유죄 판결을 받았다.
주동자 미성년자 2명은 배상금 규모 다투는 중
우산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 영상을 촬영하고 최초로 유포한 주모자 2명도 시범 판결 대상이다. 두 주범은 덴마크 동부고등법원(Østre Landsret)에서 피해자에게 지급할 배상금 규모를 다투는 중이라고 <DR>이 보도했다.
여성 피해자가 받을 배상금으로 지금껏 확인된 금액은 6만 크로네(1100만 원)로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2016년 1심 재판부는 이미 유죄를 인정하고 피고인 2명에게 각각 벌금 2000크로네(37만 원)와 피해자기금(Offerfonden)에 500크로네(9만 원)를 납부하라고 판결했다. 2017년 피해보상위원회(Erstatningsnævnet)는 주모자 2명이 3만 크로네(550만 원)를 모아 피해자에게 지급해야 한다고 명령했다. 영상을 유포해 입힌 피해를 배상하는 것이다. 피해자가 요구한 6만 크로네(1100만 원)의 절반이었다. 2019년 링뷔지방법원(Retten i Lyngby)은 피해자가 주모자 2명을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에서 영상을 촬영해 입힌 피해를 배상하기 위해 3만 크로네(550만 원)을 더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덴마크 동부고등법원이 2월19일 연 재판에서 피해자 변호인 미리암 미카엘센(Miriam Michaelsen)은 온라인에서 해당 영상을 삭제하는 비용도 주모자 2명이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중 일부는 피해 여성에게도 지급된다. 재판이 모두 끝나기 전까지는 피해 여성이 가해자에게 받을 배상금 규모가 얼마가 될 지 알 수 없다.
디지털 성범죄 처벌 수위 강화
우산 사건을 계기로 덴마크 정부는 디지털 성범죄 처벌 수위를 강화했다. 2017년부터 논의를 시작해 2018년 4월5일 법을 개정했다. 디지털 성범죄 형량은 최대 3년으로 1년 늘렸다. 공연음란죄 벌금형 최고액도 5000크로네에서 7500크로네로 높였다. 공연음란죄에 피해자가 미성년자일 경우 특히 엄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