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노동자의 친구, 앙케르 예르겐센 덴마크 전 총리 별세
가난한 노동자 출신으로 노동자 권익 강화에 앞장서며 덴마크의 닻(Anchor)이라는 별명을 얻은 앙케르 예른겐센(Anker Jørgensen) 덴마크 전 총리가 3월20일 세상을 떠났다. 향년 93세였다.
그는 1973년부터 1987년까지 15년 동안 사회민주당(Socialdemokratiet. 2002년부터 Socialdemokraterne라는 이름을 쓴다) 대표를 지내며 노동자를 대변하는 정치인으로 활약했다. 1972년부터 1973년 그리고 1975년부터 1982년까지 덴마크 총리로 일했다.
앙케르 예르겐센 덴마크 전 총리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CC BY-SA Hansjorn)
모든 덴마크 정당은 예르겐센 전 총리를 추모하고 나섰다. 헬레 토르닝 슈미트 전 총리는 페이스북에 요한슨 전 총리는 ”언제나 정의와 평등을 위해 싸운 명예로운 사람”이라며 “그는 늘 가장 가난한 사람과 기회에서 소외된 이들을 생각했다”라며 추모 메시지를 올렸다.
https://www.facebook.com/hellethorningschmidt/posts/10154656847513852
모튼 외스터가(Morten Østergaard) 덴마크사회자유당 대표는 “앙케르 예르겐센은 정치인이기 전에 한 사람이었다”라며 “그가 남긴 영감은 오래토록 살아남을 것”이라며 그를 추모했다.
https://twitter.com/oestergaard/status/711586728025391104
노동 운동 끝에 총리직에 오른 가난한 노동자
앙케르 예르겐센 전 총리는 가난한 노동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다섯 살 때 양친이 모두 결핵으로 숨져 고아가 됐다.
그는 노동조합에서 일하며 정치가로서 눈을 떴다. 1950년 화물노조에 가입해 처음 노조 활동을 시작한 뒤로 몇몇 노조를 거치며 노동자 권익 강화에 힘쓰다 1964년 처음 국회의원이 됐다. 그 뒤로 30년 동안 국회의원으로 일했다. 1994년 국회를 떠났다.
1974년 10월3일 전임 총리였던 옌스 오토 크락(Jens Otto Krag)이 후임자로 앙케르 예르겐센을 지목해 14개월 동안 총리직을 수행했다. 1975년 다시 총리직에 올라 7년간 일했다.
재임 기간 동안 앙케르 예르겐센 전 총리는 덴마크의 사회복지망을 확충하는데 힘썼다. 1975년 사회보조법(Social Assistance Act)을 제정해 전반적인 복지 수준을 끌어올렸으며, 새 기본교육법(Basic Education Act)을 만들어 기본 교육 과정의 틀을 다졌다. 이 때부터 9년간 국민 기본 교육과정을 거치거나 선택적으로 프리스쿨에 다니는 현행 덴마크식 교육 과정이 공식화됐다. 1979년 4월 국가휴일법을 만들어 의무 휴일을 1년에 30일로 늘렸다. 1975년 3월에는 세입자를 보호하기 위해 기초 주거기준을 강화하는 법을 만들기도 했다.
복지 수준을 끌어올리는 과정에서 국가 부채도 늘어났다. 이는 정치적 약점으로 작용했다. 그는 총리로 재임하는 동안 몇 차례 사회복지 제도를 개혁해 수혜 기준이 강화해야 했다.
노동자 거주지역인 수하운 자택 앞에서 포즈를 취하는 앙케르 예르겐센 덴마크 전 총리 (출처: 위키미디어커먼즈 CC PD)
경제 개혁에 소홀했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앙케르 예르겐센 전 총리는 대중적으로 많은 인기를 누렸다. 노동자 출신으로서 총리 자리까지 오르기도 했지만 늘 검소한 생활을 유지하며 노동자 출신이라는 정체성을 잊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총리에게 내주는 화려한 공관에 들어가는 대신 노동자 거주 단지 수하운(Sydhavnen)에 있는 좁은 자신의 아파트에 아내와 네 자녀와 함께 살기를 고집했다.
사회민주당은 3월20일 앙케르 예르겐센 전 총리를 추모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앙거는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훌륭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라는 정치인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