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종종 디자인을 음악 업계에 비유합니다. 비틀즈의 폴 맥카트니는 백여 곡을 작곡했지만, 영원히 남은 명곡은 1~2곡 정도입니다. 이런 곡에는 다른 곡과 다른 무언가를 했겠지요. 저는 클래식 음악, 특히 모차르트 곡을 좋아합니다. 모든 모차르트 곡을 들으려면 240시간을 들어야 하지만 여러분도 알듯이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듣다보면 아는 노래가 나옵니다. 프리츠 한센도 마찬가지겠지요. 상징적인 가구만 기억에 남고 나머지는 잊혀질 겁니다.”
야콥 홀름(Jacob Holm) 프리츠 한센 최고경영자(CEO)는 명품 가구를 만드는 지름길은 없다고 말했다. 디자인하우스가 3월8일부터 12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개최하는
2017 서울디자인페어 중 리빙트렌드세미나 무대였다.
프리츠 한센(Fritz Hansen)은 덴마크 목수 이름이다. 그는 1872년 자기 이름을 내걸고 회사를 세웠다. 직접 만든 첫 가구는 1915년 선보였다. 증기로 나무를 구부려 만든 의자였다. 1932년 프리츠 한센은 디자이너이자 건축가인 아르네 야콥센(Arne Jacobsen)과 손잡았다. 그가 고안한 가구를 장인의 솜씨로 실체화했다. 개미 의자, 백조 의자, 달걀 의자 등 시대를 상징하는 작품을 선보였다. 그 뒤로 폴 케홀름(Poul Kjærholm) 한스 웨그너(Hans J. Wegner) 등 유명 디자이너와 협업했다. 프리츠 한센은 145년 동안 여러 디자이너와 일하며 숱한 아이콘(icon) 가구를 만들어냈다. 프리츠 한센이라는 이름은 한 목수에서 덴마크 명품 브랜드로 거듭났다.
무엇이 프리츠 한센 가구를 명품으로 만들었을까. 야콥 홀름 CEO는 프리츠 한센도 명품을 의도적으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아르네 야콥센이 코펜하겐에 SAS로얄호텔을 지으며 딱 필요한 만큼만 만든 의자가 50년 뒤인 지금 플라스틱과 가죽 재질로 대량생산돼 세계 시장에서 인기를 얻는다고 말했다.
“우리도 왜 오래된 디자인이 50년 뒤에 갑자기 인기가 많아졌는지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어요. 그냥 그런 거죠."
디자인 철학을 지키며 담대하게 실험하고 실패를 반복하는 정도가 지금의 프리츠 한센을 만든 비결이라고 야콥 홀름 CEO는 설명했다.
“새로운 디자인을 만드는데 10년까지도 걸립니다. 프리츠 한센에는 50~60년 된 제품군이 10가지 있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우리는 늘 사랑받는(evergreen) 가구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죠. 계속 시도하고 실패하고 또 시도하다보면 우리의 전략과 철학이 더해져 다음 아이코닉(iconic) 가구를 만들 기회가 찾아옵니다”
프리츠 한센은 제조회사 아니라 디자인 회사
야콥 홀름 CEO는 프리츠 한센의 사명이 수공예(crafting), 시간을 초월하는(timeless), 디자인(design)이라고 말했다.
공예는 장신 정신과 제조업이 만나는 지점이다. 주문이 늘어도 프리츠 한센은 수작업을 고집한다. 현대적 제조 기술을 접목하기는 하지만 모든 가구는 장인이 직접 손으로 만든다. 야콥 홀름 CEO는 주문이 늘어나는 만큼 더 많은 직원을 고용해 덴마크의 전통 수공예 기술을 가르쳐야 한다고 말했다.
시간을 초월하는 가구를 만든다는 말은 유행에 편승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야콥 홀름 CEO는 “우리는 모던해지려고 노력하지 않고 반대로 접근한다”라고 말했다. 시간에 얽매지 않는 본질적인 디자인을 만들기 때문에 세대를 넘나들며 사랑받을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야콥 홀름 CEO는 “프리츠 한센은 제조회사가 아니라 디자인 회사”라며 디자인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프리츠 한센이 “덴마크 디자인이라는 복음을 퍼뜨리려고 한다”라며 덴마크적인 디자인의 시발점을 소개했다. 덴마크 디자인은 장인 정신과 오래된 목공예 전통이 기능주의와 결합한 결과물이다. 150년 된 전통이 1920년대 독일 바우하우스에서 넘어 온 기능주의 사조를 만나 지금의 덴마크 디자인을 낳았다. 그는 “디자인은 예쁘기만 하면 안 된다”라며 “디자인에는 목적이 있어야 하고, […] 그 목적은 이해하기 쉽고 직접적이어야 한다”라고 말했다.
2017년 3월8일 오후 리빙트렌드세미나 무대에 오른 야콥 홀름 프리츠 한센 CEO (사진: 조혜림)
프리츠 한센의 디자인 철학
사명(mission statement)은 디자인이 추구할 방향을 규정한 디자인 철학으로 구체화됐다. 야콥 홀름 CEO는 프리츠 한센의 디자인 철학을 세 갈래로 나눠 설명했다. 감정∙이성∙비주얼이다. 제품에서 진정성이 느껴져야 고객이 제품에 깊이 관여하며 감정을 움직인다.
이성적으로는 뛰어난 재료를 사용해 마감까지 훌륭하게 마쳐 한 세대 이상 살아남아야 한다. 가죽이 쓸 수록 부드러워지듯 올바른 목적으로 활용한 오래된 제품에 남은 흔적은 그 제품과 사용자가 엮인 역사가 된다. 야콥 홀름 CEO는 이를 “오래된 아름다움”이라고 지칭했다.
비주얼은 유행을 따르라는 얘기가 아니다. 책상, 의자 등 가구는 이미 모두 발명됐다. 그 속에서 수 많은 요소를 엮어 독창성을 추구해야 한다. 프리츠 한센은 가구, 특히 의자를 3차원 조각품으로 본다고 야콥 홀름 CEO는 설명했다. 보고 어느 각도에서 모든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세 가지 디자인 철학의 교집합에서 프리츠 한센의 디자인 유전자(DNA)가 나온다고 말했다.
프리츠 한센에는 디자이너가 없다
이토록 디자인을 중시하는 프리츠 한센에는 디자인 부서가 없다. 아르네 야콥센 시절부터 프리츠 한센은 외부 디자이너와 협업해 가구를 만들었다. 덴마크 디자인 문화를 체득한 덴마크 디자이너는 물론이고 외국 디자이너도 초빙한다. 외부인의 시각으로 프리츠 한센의 디자인 철학을 재해석함으로써 새로운 영감을 수혈받는다고 야콥 홀름 CEO는 설명했다. 그는 스페인 출신 디자이너 하이메 아욘(Jaime Hayon)과 협업을 예로 들었다.
“그의 경험은 덴마크적이지 않지만 프리츠 한센과 일하면서 우리 철학을 바탕으로 그의 디자인 방식을 덴마크적으로 해석해 냅니다. 이것이 프리츠 한센이 외부의 영감을 얻는 방법이죠."
"덴마크 디자인 비결이 궁금하면 덴마크에 직접 와서 경험하라"
마지막으로 야콥 홀름 CEO는 덴마크의 문화가 덴마크 디자인에도 녹아들었다고 설명했다. 길고 어두운 북유럽 겨울을 실내에서 견뎌야 하기에 집 안을 꾸미고 손님을 초대하는 일이 잦다. 빛이 부족하기에 조명을 더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해가 뜨면 밖에서 시간을 보내고 해가 안 뜨면 촛불을 켠다. 덴마크인은 사회적 동질감을 중시한다. 눈에 띄는 것을 선호하지 않기에 디자인 역시 보편적이고 겸손하다.
그는 이런 문화의 총체가 “휘게(hygge)”라며 "덴마크 디자인이 무엇인지, 덴마크 디자인의 DNA가 무엇인지 궁금하면 덴마크에 직접 와서, 가능하면 덴마크인 집에 초대 받아서 덴마크적인 요소가 어떻게 디자인에 반영됐는지 경험하길 바란다”라고 조언했다.
같은 날 리빙트렌드세미나 무대에는 안톤 훅크비스트(Anton Hogkvist) 이케아 코리아 인테리어 디자인 총괄, 페테르 프란센(Peter Frandsen) 베르판(Verpan) 대표도 올라 북유럽의 문화와 디자인 특징을 설명했다. 디자인하우스가 개최한
2017 서울리빙디자인페어는 3월8일부터 12일까지 서울 강남구 코엑스에서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