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검찰은 형사소송법에 의거해 수사권·기소권·공소유지권 등 권한을 독점한다. 그래서 검찰이 연루된 법조 비리 사건은 제대로 수사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전관예우, 뇌물수수, 정치 검사, 스폰서 검사는 옛말이다. 최근 한국 사회를 뒤흔든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도 검찰 고위 간부 출신 인사가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났다.
이런 사태를 본 국민은 검찰 조직을 개혁해야 한다는 문제 의식을 갖게 됐다. 검찰 개혁은 검찰에 과도하게 집중된 권한을 제한한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예로 수사권 독립을 들겠다. 검찰은 수사지휘권을 갖고 경찰 경찰의 수사 활동을 지시한다. 수사권 독립이란 수사지휘권을 경찰에 주고 경찰이 독립적으로 수사를 벌이도록 하자는 얘기다. 검찰이 지닌 권한을 경찰에 나누면 두 조직이 서로 부패하지 않도록 견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수사권 독립은 경찰에 대한 인식 부족과 검찰의 반대로 아직 실현되지 못했다.
나는 2016년 9월 덴마크 검찰청을 방문했다. 김영란 법이 시행된 뒤였다. 법으로도 해결하기 어려운 부패 문제는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했다. 덴마크 정부는 큰 권력을 손에 쥔 수사기관이 부패하지 않도록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 물어봤다. 경찰위원회 프랭크(Frank) 수사관, 검찰청 안더스 리넷(Anders Linnet) 검사관을 인터뷰한 뒤 반부패 정책을 연구하는 한스 크라우제 한슨(Hans Krause Hansen) 코펜하겐비즈니스스쿨(CBS) 교수를 만났다. 주한덴마크대사관이 인터뷰 자리를 만들도록 도와줬다.
김희욱: 짧게 두 분 자기소개와 어떤 일을 하는지 설명해주세요.
프랭크: 이 친구(안더스)는 법률 업무를 책임지고 저는 경찰 업무를 책임집니다. 하지만 우리는 함께 일합니다. 부패 사건이 발생하면 수사 단계에서는 내가 책임지고 내 방식으로 조사합니다. 물론 수사 중에는 법적 자문 역할로 내게 검사가 배정됩니다. 검사가 나를 도와주지만 수사 단계는 궁극적으로 경찰인 내 책임입니다.
기소 단계로 넘어가면 검사인 이 친구가 책임을 맡습니다. 이 단계에서 나는 그를 돕는 조력자가 됩니다. 경찰과 검찰이 일선에서 함께 일합니다. 조직적으로 바로 연결돼 있습니다. 신뢰에 기반해 협업을 추구하는 모델입니다.
김희욱: 신뢰를 기반으로 한다고 했는데, 두 기관에서 수사권 문제로 갈등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신뢰를 어떻게 쌓았나요?
안더스: 덴마크 검경 조직도 1916년 사법집행법이 만들어지기 전까지는 두 조직의 역할이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사법 개혁으로 역할을 분명히 규정하고 각각 독립성을 보장하며 유기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모델을 구축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오랜 기간 합의를 거치며 모델을 발전시켰기에 이 과정에서 서로 신뢰가 쌓였다고 설명할 수 있겠네요.
덴마크 수사기관 구조도(사진: 김희욱)
김희욱: 덴마크 검찰·경찰 조직 구조는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어떤 특징이 있나요?
안더스: (덴마크) 검찰과 경찰은 상하 관계가 아니라 협력 관계로 사건을 맡습니다. 수사권은 경찰에게, 기소권은 검찰에게 있습니다. 같은 사건을 두고 업무는 분담하지만 의사결정은 함께 합니다. 수사와 기소 과정 혹은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두 권한이 묵살되는 경우 의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수사 결과는) 최종적으로 검경위원회가 검토하고 결정합니다.
김희욱: 검경위원회에 위원 12명이 있는데, 어떤 역할을 하나요?
프랭크: 재판 전에 필요한 모든 형사 소송을 담당합니다. 형사 사건은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과 기소하는 검찰의 결정을 검토∙판단함으로써 경찰과 검찰이 제기한 공소를 취하하기도 하고, 보충 또는 수정합니다. 불기소된 사건을 경찰이 재수사 혹은 문제 제기를 하면 검경위원회가 범죄인을 치밀하게 수사하고 공소를 유지합니다. 거꾸로 검찰이 수사 과정에 문제를 제기하면 수사의 공정성과 정확성을 확보함으로써 무고한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합니다.
김희욱: 고위공직자 혹은 검찰 내부 부패 사건은 없나요?
프랭크: 부패를 어떻게 규정하는냐에 따라 부패의 형식은 다르죠. 뇌물을 건내 청탁하는 사례는 오래 전에 사라졌습니다. 내부 부패가 없는 이유는 시민과 언론이 부패할 가능성을 지닌 정부기관의 모든 의사 결정 과정을 들여다볼 수 있게 투명하게 공개하기 때문입니다. 부패 가능성을 줄이도록 언론이 자율성을 갖고 활동합니다. 부패 사건은 결국 언론한테 샅샅이 드러납니다.
김희욱: 정부와 관계는 어떤가요?
안더스: 검찰청은 사법부 아래 있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는 사법부가 검찰이 법적 권한을 행사하는데 개입할 수 있습니다. 특검을 하는 경우에는 사법부가 관여할 수 없습니다. 모든 특검 과정은 시민이 볼 수 있도록 공개적으로 진행합니다. 수사 기록도 공개해야 합니다.
김희욱: 검찰청 인력은 몇 명 정도인가요?
안더스: 검찰청에는 고용된 사람은 600명 정도입니다. 여성 비율이 50% 보다 높습니다.
한스 크라우제 한슨(Hans Krause Hansen) 코펜하겐비즈니스스쿨(CBS) 문화간 커뮤니케이션 및 경영학과 교수(사진: 김희욱)
김희욱: 덴마크 부패지수가 낮은 이유가 이런 법적이 장치 덕분인가요?
한스: 영리한 언론인이 뭔가 발견해 대중에게 공표하면 조사가 뒤따르고 때로는 법적 사건이 되겠지만 덴마크에는 그런 경우가 거의 없습니다.
부패는 인간성의 문제 혹은 경제력이나 시스템의 문제이기도 합니다만 크게는 사회적 문제입니다. 사회 조직에 권력을 맡기면 거기서 부패가 발생할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 권력을 맡길 때 국민이 믿으면 부패가 생기지 않습니다.
부패가 많은 나라, 예를 들어 공산주의 국가는 서류 작업이 많습니다. 서류와 정책으로 틀을 정하려 합니다. 권력을 위탁받아 남용하는 사람은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는 다양한 방법을 연구합니다.
덴마크에는 투명성을 유지하는 공식적 보고 절차나 규칙이 많지 않습니다. 처음에 사회적인 합의로 만든 원리 원칙을 따를 뿐입니다.
김희욱: 권력을 위탁받은 자가 부패하지 않게 막으러면 어떻게 노력해야 할까요?
한스: 부패가 일어나는 지금 문제를 공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만 문제를 해결할 법안을 만들 수 있습니다. 역설적으로 더 많이 통제할 수록, 더 많이 감시할 수록 신뢰 지수는 떨어집니다. 한국 사회는 권력이 어떻게 조직되고 분배되는지를 정치·경제적인 면에서 먼저 고민해야 합니다. 그리고 불신이 생기지 않는 문화를 만드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희욱: (정부 조직) 안이 부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한스: 부패가 공공에 노출되도록 언론의 자율성을 보장해야합니다. 두 번째는 내부고발자가 피해를 당하지 않게 보호해야 합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청탁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먹고 사는 문제도 해결하는 보호 장치가 필요합니다.
덴마크 검찰청 방문출입증(사진: 김희욱)
덴마크 검찰과 경찰 수사관을 인터뷰하며 신뢰를 기반으로 시스템을 만든 원리를 조금이나마 깨우쳤다. 덴마크는 사법체계를 민주적으로 가다듬으려 노력했다. 검찰과 경찰에 권한을 균형 있게 나누고 두 기관이 서로 견제하도록 만들어 독단적으로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게 막았다. 덴마크가 선진적인 사법체계를 꾸린 비결이 부정부패 문제에 시달리는 한국 수사기관을 개혁하는데 작은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