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배출량을 목표한 만큼 감축하려면 농축산업에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에 따라 동일한 금액을 부담하는 세금, 이른바 탄소배출세(CO 2 e-tax)를 신설해야 한다고 전문가위원회가 덴마크 정부에 조언했다.

덴마크 조세부(Skatteministeriet)가 구성한 전문가위원회가 2월21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환경세 개혁안 보고서 최종본(Grøn skattereform - endelig afrapportering) 내용이다.

배경: 농축산업 친환경 전환에 탄소세 도입 필수

2019년 덴마크 총선에서 보수연립 정부를 밀어내고 정권을 잡은 사회민주당(Socialdemokratiet) 주도 진보연립 정부는 기후위기 대응을 정부 책임으로 못박은 기후법(Klimaloven)을 제정했다. 203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을 70% 감축하고 2050년에는 탄소 중립 국가로 거듭나겠다는 정책 목표를정부가 책임질 사안으로 격상해 정권이 바뀌더라도 기후위기 대응은 계속 이어가자는 발상이다. 2020년 6월 정부 발의로 국회 표결에 부친 기후법안은초당적 지지를 받으며 95% 찬성으로 시행됐다.

하지만 기후법에 동의한 정당끼리도 구체적인 시행 방안에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대표적인 사안이오늘 보고서가 다룬 농축산업 탄소세 도입이다. 농축산업에 탄소세를 부과하면 가격경쟁력이 떨어진 덴마크 농축산업계가 도태될 것이라는 우려부터, 세금 규모와 부담 주체까지 세부사항에서 여러 주체가 갑론을박했다. 이 때문에 2021년 2월 발족한 '환경세 개혁안을 위한 전문가위원회'(Ekspertgruppen for en Grøn skattereform)가 2022년 가을께 발표하기로 한 정책 보고서는2024년 2월에야 나왔다.

합의가 도출되지 않는 와중에 덴마크 농축업계 자정 노력은 미비했다. 지난 10년 간 덴마크 전 사회가 탄소중립을 향해 노저으며 탄소배출량을 10% 감축하는 와중에 농축산업계가 감축한 탄소배출량은 0.4%에 그쳤다. 심지어 앞으로는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라면 2030년께 덴마크 전체 탄소배출량 중 약 46%가 농축산업계에서 나오고, 이 때문에 70% 감축은커녕 유럽연합(EU)가 정한 기후목표치에도 미달해 대규모 벌금을 내야할 판국이다.

2030년 덴마크 탄소배출량 구성 예상 (환경세 개혁안 보고서 Grøn skattereform 22쪽)

정책 제안: 생산자에 배출량에 비례한 세금 부과하라

2월21일 기자회견에서 전문가위원회 위원장으로서 보고서를 발표한 오르후스대학교 경제학과 미카엘 스바르에르(Michael Svarer) 교수는 농축산업에서 탄소배출량을 감축하려면 유통 말고 생산 단계에 탄소세를 부과하는 쪽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예를 들어 유통 매장에서 소비자에게 농축산물을 팔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 1톤(t)당 750크로네(14만5천 원) 탄소세를 매기면 2030년까지 덴마크가 감축하는 탄소배출량은 20만 톤에 그친다. 반면 생산자에게 같은 세금을 매기면 감축량이 280만 톤으로 늘어난다. 무려 14배나 더 강력한 대응책이라는 얘기다.

탄소세 부담 주체에 따라 효과가 14배나 차이나는 이유는 파급력 때문이다. 유통업자에게 세금을 매기면 덴마크 농축산업계가 수출하는 돼지고기나 우유, 유제품에는 영향이 없다. 게다가 시행하기도 쉽지 않다. 소매점이 유통하는 다양한 식품의 탄소배출량을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소 방귀나 농지 비료에서 나오는 탄소는 파악하기 쉽다. 미카엘 스바르에르 교수는 다음처럼 지적했다.

"바바리아(Bavaria) 닥터 외트케르(Dr. Oetker's) 냉동 피자 한 판의 탄소배출량은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모를 때는 (업계) 평균 수치를 써야만 하죠. 그러면 제조업체는 기후 친화적으로 일할 유인이 없어집니다."

전문가위원회는 배출한 탄소 1톤당 징수액을 3단계로 나눈 3개 모델을 제시했다. 모델별 징수액은 각 750크로네(14만5200원), 375크로네(7만2600원) 그리고 125크로네(2만4200원)다. 각 모델을 도입할 경우 2030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40만~320만 톤까지 감축할 수 있다고 위원회는 전망했다.

탄소세 모델 효과 2030년 개요 (환경세 개혁안 보고서 Grøn skattereform 35쪽)

탄소세 도입시 농축산물 소매가 2~10% 인상 전망

탄소세를 슈퍼마켓 계산대가 아니라 생산 현장에서 징수해도, 소비자 역시 가격 인상으로 세 부담을 간접적으로 나눠지게 된다. 가장 많은 금액을 내는 모델을 도입할 경우 소고기 값은 10% 가량, 돼지고기 가격은 2%, 우유 값은 5%에 약간 못 미치는 만큼 오른다고 연구진은 예상했다.

장바구니 가격에 대입해 보면 킬로당 45크로네(8710원)인 다진소고기 500그램(g)과 킬로당 35크로네(6775원)인 다진 돼지고기 500그램에 13크로네(2516원)인 우유 1리터를 구매할 경우 내야할 돈이 현재 93크로네(1만8000원)에서 98.7크로네(1만9100원)로 5.7크로네(1100원)올라간다는 얘기다.

농축산업 종사자 최대 10% 실업할 수도

탄소세를 도입하면 세 부담 증가로 농축산업계 종사자가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고 연구진은 분석했다. 2030년까지 전체 종사자 중 2~10%에 해당하는 1650~8000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는 얘기다.

부담은 농축산업 비중이 큰 농촌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전망도 나온다. 농촌 지역 이익을 대변하는 농촌지역사회협의회(Landdistrikters Fællesråd) 스테펜 담고르(Steffen Damgaard) 의장은 지역에 따라 많게는 18%에 이르는 농부가 새 일자리를 찾아야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미카엘 스바르에르 교수는 낙관했다. 덴마크 노동시장은 이미 수 년 간 완전 고용 상태이기에 새 일자리를 찾기가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위원회는 (농축산업) 실업자가 다른 경제 부문으로 흡수될 것이라고 예상합니다. 덴마크에서 매년 직장을 바꾸는 사람이 80만 명에 달합니다. 80만 명에 비하면 실업이 예상되는 인원이 우려스러울 정도로 많지는 않죠."

전문가위원회는 탄소세 징수액을 세금 감면이나 보조금 지급 등에 활용해 농축산업계가 기후친화적으로 거듭나는데 지원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녹색삼자회의서 합의 도출해야

이번에 위원회가 보고서로 내놓은 농축산업 탄소세 도입안은 녹색삼자회의(grønne trepart) 손으로 넘어갔다.

녹색삼자회의는 덴마크 식품업계 소통과 합의, 경제적으로 지속가능한 구조 조정을 목표로 모인 다자간 협의체다. 덴마크 정부는 물론이고 업계 이익단체인 덴마크 농업식품위원회(Landbrug & Fødevarer), 친환경 비영리단체 덴마크 자연보호협회(Danmarks Naturfredningsforening), 식품 노동조합 NNF(Fødevareforbundet NNF), 덴마크 철강노동조합(Dansk Metal), 덴마크 경제인연합회(Dansk Industri∙DI), 지방자치단체연합(Kommunernes Landsforening∙KL) 등 업계 이해관계자가 산업군을 망라해 머리를 맞댄다. 친환경 싱크탱크 콘시토(Concito)도 외부 전문가 집단으로서 녹색삼자회의에 참가한다. 덴마크 정부는 국회의장까지 역임한 헨리크 크리스텐센(Henrik Dam Kristensen)을 녹색삼자회의 의장으로 선임했다.

보고서 속 정책 제안은 녹색삼자회의에서 이어 토론에 부친다. 정부가 노조 등 이해관계자를 설득하고 정치적 합의를 도출하면 법제화 단계로 넘어간다. 농축산업 탄소세 도입 시기는 이르면 올 여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환경세 개혁안을 위한 전문가위원회 구성원은 다음과 같다.

  • 위원장: 미카엘 스바레르(Michael Svarer) 교수, 오르후스대학교 경제연구소(Institut for Økonomi, Aarhus Universitet)
  • 요안 코르츠(Joan Faurskov Cordtz), 세무회계법인 PwC 파트너, 조세 전문가
  • 수산네 율(Susanne Juhl), 독립 컨설턴트
  • 클라우스 크레이네르(Claus Thustrup Kreiner) 교수, 코펜하겐대학교 경제연구소(Institut for Økonomi, Københavns Universitet)
  • 페테르 쇠렌센(Peter Birch Sørensen) 교수, 코펜하겐대학교 경제연구소(Institut for Økonomi, Københavns Universitet), 전 기후위원회(Klimarådet) 위원장
  • 메테 테르만센(Mette Termansen) 교수, 코펜하겐대학교 기후환경경제연구소(Institut for Fødevare- og Ressourceøkonomi, Københavns Universitet)

참고 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