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정부가 덴마크 최대 맥주 제조업체 칼스버그(Carlsberg)의 러시아 내 사업체를 강제로 국유화하며 사실상 몰수했다. 서방 경제제재에 맞대응하며 자국 내 적성국 자산을 국유화한 조치인데, 칼스버그가 아닌 밤중에 홍두깨를 맞고 희생양이 됐다.

러시아 정부는 7월16일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Vladimirovich Putin) 대통령령으로 브랜드 발티카 브루어리(Baltika Breweries)를 임시 국유화한다고 발표했다.  지난 4월25일 러시아 내 적성국 정부나 개인의 자산 소유권을 임의로 연방정부에 귀속할 수 있게끔 허용하는 대통령령 302호를 발효한 후속 조치인데, 여기서 임시 국유화 대상 적성국 기업으로 덴마크 칼스버그그룹과 유제품으로 유명한 프랑스 식품제조업체 다농그룹(Danone) 두 곳을 지정했다.

프랑스 다농그룹과 덴마크 칼스버그그룹이 러시아에 소유한 사업체의 지분을 2023년 7월16일부로 임시 국유화한다고 공표한 러시아 대통령령 (러시아 대통령실 발췌)

러시아 내 자산을 매각하려던 칼스버그 그룹은 당일 바로 페테르 콘드루프(Peter Kondrup) 부회장 명의로 보도자료를 내고 갑작스러운 러시아 정부의 개입에 당황스러운 기색을 내비쳤다.

칼스버그 그룹은 2022년 3월부터 러시아 내 사업 일체를 매각하는 방안을 찾아왔다. 매각을 준비하는 2023년 6월23일에는 조치로 러시아 내 모든 사업체를 그룹에서 분리하는 절차를 밟았고 러시아 당국에 승인만 앞둔 상황이었다. 여기서 분리한 사업체가 발티카 브루어리다. 칼스버그 스웨덴 98.56%, 칼스버그 독일 0.09%와 더불어 자사 유한회사 1.35%인 발티카 브루어리 지분은 7월16일부터 바로 러시아 연방국유자산관리청이 관리 경영한다. 갑작스러운 국유화 조치 때문에 러시아 내 사업체 매각 절차가 곤란해졌음은 물론이다. 국유화 해제 기한은 없다. 푸틴 대통령이 대통령령으로 해제할 때까지다.

칼스버그 그룹은 국유화 조치에 앞서 러시아 당국에서 어떤 얘기도 듣지 못했다며, 러시아 현지 법과 규제에 따라 운영하던 사업체가 이런 상황에 처했음이 예상 밖이라고 평했다. 칼스버그는 국유화 조치의 법적이고 경영적인 면을 고려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 전했다.

지난 5월 연고점을 찍고 하락세였던 칼스버그 주가는 잠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가 러시아 국유화로 발표 후 첫 거래일인 7월17일부터 하락세로 돌아갔다. 발표 전 7월14일 종가 1037크로네(19만8940원)에서 19일 1015크로네(19만4720원)까지 내려갔다 21일 현재는 1028크로네(19만7210원)까지 회복했다.

칼스버그 그룹(Carlsberg Group) 제공

서방 경제제재 반격에 불똥 뒤집어 쓴 칼스버그

국유화란 사적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던 민간 사업체나 산업계 전체의 소유권을 정부가 몰수하는 조치다. 국영 기업은 정부부처가 직접 경영하거나, 공영기업을 통해 간접 통제한다. 보통 전쟁 같은 이례적인 상황에 물류 교통이나 기간산업, 은행, 천연자원 채굴 업체를 국유화한다.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는 전쟁 책임을 묻는 서방의 경제제재에 보복으로 국내 서방국 산업체를 국유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사례가 처음은 아니다. 나치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내 미국 포드차 공장을 국유화해 무기공장으로 활용했다. 독일은 전쟁이 끝난 뒤 포드에 공장 소유권을 돌려줬다. 냉전 당시 러시아 전신인 소비에트 연방(GDR)도 민간 생산시설을 모두 국유화해 계획 경제 체제를 도입했다.

칼스버그가 맞이한 상황은 밝지 않다. 러시아 정부의 관리 하에 계획대로 사업체를 매각하고 러시아 시장에서 철수하기는 어려워보인다. 설사 매각에 성공한다고 해도 러시아가 칼스버그에 대금을 지급할지도 알 수 없다. 매각하지 않는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매각이 무산된 뒤 우크라이나 전쟁이 끝나면 해외 자본을 유치하려는 러시아가 칼스버그에 소유권을 돌려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돌려받은 자산이 온전하라는 보장도 없다고 미켈 옌센(Mikkel Emil Jensen) 쉬뱅크(Sydbank) 선임 분석가가 <DR>과 인터뷰에서 경고했다.

기업법 전문가 쇠렌 한센(Søren Friis Hansen) 코펜하겐비즈니스스쿨(CBS) 교수는 "이 사건은 독재 치하 국가에서 사업하는 위험성을 보여준다"라며 "우리 모두는 러시아가 완전한 정상 국가가 아님을 알고 있었다"라고 <DR>과 인터뷰에서 말했다.

참고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