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계승자가 될 수는 없지만, 제 힘이 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덴마크 왕위 계승 순위 2위가 된 크리스티안(Christian) 왕자가 18세 생일 축하연에서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고, 차세대 왕가의 구성원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약속했다.

덴마크 왕위 계승 2순위 크리스티안 발데마르 헨리 욘(Christian Valdemar Henri John) 왕자, 몽페자 백작 (덴마크 왕실 Kongehuset 제공)

마르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의 장남 프레데리크(Frederik) 왕세자의 첫째 아들 크리스티안 왕자 18세 생일을 맞아 2023년 10월15일 첫 왕실 공식 일정을 치렀다. 전통에 따라 아멜리엔보르(Amalienborg) 왕궁 발코니에서 국민에게 손을 흔들고 저녁에는 생일 축하연을 치렀다.

15일 저녁 크리스티안 왕자 18세 생일 축하연은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이 왕궁에서 주최했다. 덴마크 왕실은 손님 360명을 초대했다. 이 가운데 200명은 덴마크 전역에서 초대받은 올해 18세가 된 평민이었다. 운동선수와 인플루언서, 유튜버 등도 초대받았다.

마르그레테 2세 여왕은 "네 인생의 경로는 이미 결정됐다, 언젠가 네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할 테니까"라며 덴마크 왕위 계승 3순위가 된 크리스티안 왕자에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너는 우리 조국을 수 세기 동안 하나로 묶어준 길고 역사적인 체인에 한 고리가 됐다. 18살짜리 아이에게는 가혹한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 이건 난제이지. 하지만 네가 어디로 향하는지, 그 길을 걸은 다른 사람들이 어디에 서 있는지 안다는 건 안도감을 주기도 한단다."
마르그레테 2세 덴마크 여왕(오른쪽)과 크리스티안 발데마르 헨리 욘(Christian Valdemar Henri John) 왕자, 몽페자 백작 (덴마크 왕실 Kongehuset 제공)

마르그레테 2세 여왕에 이어 크리스티안 왕자가 다소 떨리는 목소리로 생애 첫 연설을 시작했다. 그는 자기가 완벽한 계승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자신으로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며 불완전함을 기꺼이 포용하는 다음 세대 왕가의 지혜를 보여줬다.

덴마크 왕실 전문가로서 여러 책을 집필한 토마스 라르센(Thomas Larsen)은 크리스티안 왕자가 훌륭한 연설 능력을 보여줬다고 높이 평가했다.

"연설 전문가가 쓴 대본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인간미와 진솔함이 있었습니다. 강력한 설득력이 전해졌죠."

다음은 크리스티안 왕자 18세 생일 축하연 연설 전문이다. 원문과 가까운 느낌을 전하고자 격식을 차리지 않은 구어체로 운율을 살려 번역했다.

크리스티안 왕자 18세 생일 축하연 연설

친애하는 여왕 폐하, 왕실 귀공 여러분, 정부 각료, 가족 친지, 그리고 왕국 전역에서 두 분 씩 와주신 모든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설 수 있어 매우 기쁩니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제게 다정한 말씀과 아름다운 축하연을 선물해 주셔서요.

감사합니다, 엄마 아빠. 제 평생 언제나 곁에서 저를 지지해 주셔서요.

오늘 이 자리에 와 주신 모든 청년 여러분께도 감사합니다. 이렇게 많은 동년배에게 둘러 싸여 있으니 기분이 무척 좋네요.

우리가 같을 수는 없지만, 우리는 지금 인생의 같은 시기에 서 있습니다. 공유하는 것이 있지요. 우리 모두에게 오늘밤은 낯설지요. 그 덕분에 조금은 마음 놓을 수 있네요. 바로 지금 저한테는 그 작은 틈이 필요하거든요.

지난 여름 저는 새 고등학교에서 2학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신경이 곤두섰어요. 정말로 바짝 긴장했죠. 새 반에 모든 급우는 1년 간 서로를 알고 지냈습니다. 저만 새로 등장했죠.

그래서 저는 새로운 도전의 문턱 위에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마른 입술을 적시며 서 있었습니다. 저 자신을 뛰어 넘어야만 했어요. "안녕"이라고 말문을 트고 새 급우한테 저를 소개해야 했죠. 친구들은 저를 환영해 줬습니다. 한 번에 한 걸음씩 저는 교실 분위기와 일상에 익숙해 졌고, 다른 학생을 알게 됐죠. 지금 돌이켜보면 제가 왜 그렇게나 긴장했는지 이해하기가 힘듭니다.

이런 일은 종종 일어납니다. 우리는 앞에 들이닥친 낯선 사건을 두려워하지만, 그 순간이 지나자마자 전혀 다치지 않았음을 깨닫습니다. 저는 긴장할 때마다 스스로한테 이 사실을 되새깁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기 전에도 그걸 되새겼지요. 덴마크 최고 훈장*을 달고 특별한 책임을 어깨에 짊어진 채 이 자리에 서는 것은 대단한 일이니까요.

그 짐을 저 혼자, 매일 같이 지지 않아도 돼 다행스럽습니다. 제 조국에 섬기는 역할을 맡게 돼 들뜨면서도 자랑스럽습니다. 한편으로는 제가 가족의 일원이라 안심하면서도 자부심을 느낍니다. 비록 오늘 제가 손을 조금 떨고 있긴 합니다만, 앞으로 펼쳐질 만남을 마음 깊이 새기겠습니다.

많은 우리 청년이 높은 기대치를 맞닥드리곤 합니다. 스스로와 타인이 세운 기대치를요. 너무 큰 기대는 압박이 됩니다.

너무 많은 이가 원하는 대로 인생을 살 수 없다고 느낍니다. 하지만 현실에서 우리는 유일무이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이 반에서 가장 웃기거나 똑똑한 사람은 아닐지 모르죠. 그렇다면 여러분은 다른 어떤 존재인 겁니다.

우리가 어디에서 가장 뛰어나거나 잘난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밤 이 자리에 문화계나 스포츠 분야에서 가장 뛰어난 몇 분이 계시지만, 이 얘기를 해야겠습니다.

여러분은 큰 감동을 줍니다. 저 자신도 스포츠를 관람하거나 직접 뛰기를 즐깁니다. 하지만 만일 제가 스스로한테 여러분만큼 빼어난 실력자가 되길 요구한다면, 저는 아마 운동장에 올라 서지도 못 할 겁니다.

만일 여러분이 새로운 일에 용기 내 도전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많은 것을 놓치고 살게 될까 생각해 보세요. 참가하거나 즐기려고 능력자가 될 필요는 없습니다. 연습하고 승리를 쟁취하고 싶지겠만, 우리는 경기의 승패보다 더 풍성한 존재니까요. 어떤 길에서 이기고 지든 말이죠.

당연히 저는 상상할 수 있는 최고의 왕위 계승자가 되고 싶습니다. 하지만 저는 반드시 실패할 겁니다. 제 첫 국빈 행사에 구멍 난 양말을 신지는 않겠지만, 아빠, 다른 어떤 실수를 저지르고야 말겠죠.

저는 완벽해 질 수 없습니다. 애당초 완벽함이란 무엇인가요. 다만 저는 헌신을 약속할 수 있습니다. 제가 가진 모든 것을 내놓고, 제가 배울 수 있는 모든 것을 익히겠습니다.

친애하는 엄마 아빠. 두 분은 언제나 저와 이사벨라(Isabella), 빈센트(Vincent), 요세핀(Josephine)을 돌봐 주셨어요. 우리 가족 모두가 알아요. 서로를 향해 고개만 돌리면 바로 거기서 힘을 얻을 수 있다는 걸요. 누군가 힘이 달릴 때는 언제든 가족 중 한 사람이 넘치는 에너지를 나눠줄 수 있다는 걸요.

우리는 서로를 믿고 의지합니다. 지금껏 언제나 엄마 아빠를 믿고 의지할 수 있었으니까요. 제가 몇 달 전 베를레부르크(Berleburg)에서 대자(godson)에게 연설해야 할 때처럼 말이죠. 한 마디 말씀도 안 하셨지만, 두 분은 잔뜩 긴장한 저를 굳건히 지지해 주셨어요. 두 분은 언제나 제게 정도를 일러주면서도 자유를 주셨지요. 한 번에 한 걸음씩 나아갈 기회를 언제나 제게 주셨어요.

오늘 역시 많은 발걸음 중 한 걸음이지요. 앞으로 더 많은 걸음을 내디뎌야 합니다. 언젠가 우리도 성년이 되고 어른이 될 테니까요.

오늘 제 생일을 축하하려고 도와주신 모든 분께 감사 드립니다. 여기에 계신 분과 제게 축하와 선물을 보내주신 모든 분 모두에게요. 저는 오늘을 절대 잊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내일만 되도 지금보다는 좀 덜 부담스럽게 기억하게 될 테죠.

비록 그 길이 저를 익숙한 곳으로 이끌지라도, 저는 제 길을 찾아내야 합니다. 전 세계 많은 곳에 제 뿌리가 있고, 저는 여행을 즐깁니다. 하지만 고향은 언제나 여기일 겁니다. 저는 제 조국을 사랑하니까요.

함께 일어나서 덴마크 왕국을 위해 건배합시다.

*같은 날 크리스티안 왕자는 18세 생일을 맞아 할머니인 마르그레테 2세 여왕에게 코끼리 기사단 훈장을 받았다. 코끼리 기사단 훈장(Elefantordenen)은 1400년대부터 덴마크 왕실 기사단에게 수여하는 가장 높은 훈장이다.

참고 자료